1963년 간첩 누명을 쓴 이후부터 평생을 살아온 것도 모자라 이 과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왔던 어부 5명이 망자가 돼서야 가슴에 맺힌 ‘한(恨)’을 풀었다.

특히 이들은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최소 1년~최대 10년의 징역형과 자격정지 처분까지 받아 생전 가슴에 큰 생채기를 남겼었다.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들은 지금은 망자가 된 최만춘, 하판금, 유완춘, 정영칠, 곽양자 씨.이들의 기구한 인생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0톤급 어선 대덕호 선장이었던 최만춘 씨는 1963년 6월 23일 대연평도 서남단에서 조기와 갈치를 잡던 중 북방한계선(NLL)을 넘었다.

다행히 10일 후 귀환할 수 있었지만 그는 이러한 사실을 정부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결국 정부에 발각되면서 자신은 물론, 당시 배에 타고 있던 선원 9명 모두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수사기관은 최씨 등을 ‘대한민국에 잠입한 뒤 신고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가기밀을 누설하고,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기소했다. 이에 당시 재판부는 최씨 등에게 최소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에 집행유예 2년, 최대 징역 10년 및 자격정지 10년을 각각 선고했다.

어업활동을 벌이다 국방한계선을 넘어 북에 납치된 이후 다시 탈출했다는 이유만으로 간첩으로 낙인찍은 정부당국의 고집에 당시나이 43살 이후부터의 삶은 족쇄가 채워졌다. ‘간첩’이란 족쇄를 걷어내기까지는 42년이 걸렸다.

최씨의 가족들이 2006년 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 조사에 나서 ‘한’을 풀어낸 것이다. 당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수사기관의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에 의한 수사로 인해 최씨가 허위로 자백을 했고, 일부 범죄사실이 왜곡 또는 조작됐다”는 취지의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에 유가족은 법적으로 간첩 누명을 벗어낼 수 있는 법원의 재심을 2010년 3월 청구했다.

최씨의 가족 등은 2년여 동안 진행된 재판 끝에 지난 5월 결국 무죄 선고를 받아 ‘간첩’이란 주홍글씨를 지워냈다. 이들의 무죄는 16일 재심사건에 대한 항소심에서 다시 확인됐다.

광주고법 전주 제1형사부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당시 북한의 지령을 받고 대남공작 차원에서 간첩 혐의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면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 모두 형기를 마친 뒤 노령과 숙환 등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 하늘에서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윤승갑기자 pepe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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