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씨 作 '눈물편지'

▲ '열하일기' '지붕유설' '난설헌집' '여유당전서' 등 옛 고전에 실린 수많은 선인들의 죽음, 이별 뒤에 밀려오는 슬픔과 그리움에 관한 주옥같은 글 가운데 77편 발췌, 자신의 단상 덧붙여…

“우리 농아가 죽었다니 참혹하고 비참하구나! 가련함에 나의 몸이 점점 쇠약해져 가고 있을 때 이런 일까지 닥치다니, 세상은 나에게 너무도 무심하구나. … (중략) … 먼 바닷가 변두리에 앉아 있어 못 본지가 무척 오래인데 죽다니. 그 애의 죽음이 한결 서럽고 슬프구나.”<정약용/막내아들 농아를 잃고 쓴 편지>

‘슬픔이 지극하면 우는 것’이다. 문화사학자 신정일이 슬픔과 눈물을 통해서 어제와 오늘을 이었다. 다산 정약용이 정조의 총애를 받던 초계문신들과 함께 ‘죽란시사’라는 모임을 만들어 풍류를 즐기던 어느날, 그들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값비싼 눈물을 흘린 사람이 누구인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하서 김인후가 유배지에서 읊은 시, 목은 이색이 방랑의 길을 떠났다 고향 여강에서 문생들과 함께 산놀이 가서 지은 시, 고려 시인 김황원이 평양 대동강 연광정에 올라 연구하나 밖에 못짓고 통곡하다 내려갔다는 얘기가 오고 갔다고 한다.

하지만 신정일은 자신에게 똑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연암 박지원이 누나의 상여를 지켜보며 스물여덟 해 전 누나가 시집가던 날을 회고하며 흘렸던 눈물’을 우리 역사상 최고로 값비싼 눈물로 꼽고 싶다고. 신정일이 ‘죽음을 통해 풀어낸 더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이란 부제로 자식과 부모 형제, 벗을 잃은 슬픔을 표현한 선인들의 옛 글 가운데 77편의 발췌, ‘눈물 편지’(판테온하우스. 1만5천원)를 펴냈다.

이 책에는 ‘열하일기’ ‘지봉유설’ ‘난설헌집’ ‘여유당전서’ 등 옛 고전에 실린 수많은 선인들의 죽음, 이별 뒤에 밀려오는 슬픔과 그리움에 관한 주옥같은 글에 자신의 단상을 덧붙인 것으로, 그 스스로도 “언젠가 꼭 한 번은 써보고 싶었던 책”이었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소중한 사람의 죽음 앞에 쏟아지는 북받치는 설움과 눈물을 피를 토하듯 통곡하며 쓴 살아남은 자의 상처와 슬픔, 그리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아들 면의 죽음에 목 놓아 통곡하는 이순신, 누님과 지냈던 어린 시절을 수채화처럼 펼쳐놓는 박지원, 아내의 죽음에 대해 내세에는 꼭 바꾸어 태어나 홀로 살아남은 슬픔을 알게 하겠다는 추사 김정희, 흑산도로 유배 간 둘째 형 약전의 죽음에 가슴 아픈 동기애를 전하는 다산 정약용,

남편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한 날의 아픔을 고스란히 글로 담아낸 혜경궁 홍씨, 딸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규보 등 시대의 위대한 거인들로만 알고 있었던 여러 인물들의 사사롭고도 애달픈 정과 사랑, 인간적인 모습들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 속 인물들과 새롭게 조우하게 한다. ‘눈물편지’는 모두 4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눈물은 수저에 흘러내리고(어린 자식을 잃은 슬픔), 2장은 가슴은 무너져 내리고 마음은 걷잡을 수 없으니(아내와 남편을 여윈 슬픔), 3장은 검푸른 먼 산은 누님의 쪽진 머리 같고(형재자매를 잃은 슬픔), 4장은 글자마다 눈물방울, 그대 와서 보는가(벗과 스승을 잃은 슬픔).

/이병재기자 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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