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유신헌법’에 따라 집회 및 정치활동을 금지한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이들의 잇따른 재심 청구가 이어져 이목이 집중된다.

특히 대통령선거가 본격 돌입한 가운데 정치권에서 이슈로 부각된 ‘긴급조치 피해보상법’ 논란과 연결되고 있어 정치권 및 법조계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와 관련된 재심은 이번이 전북에서는 처음으로 최근 대법원이 긴급조치 1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데 이어 올 8월 서울 북부지법이 긴급조치 9호 재심선고에서 무죄판결을 내리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실제 3일 전주지방법원 제2형사부(판사 김현석)에서는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와 관련, 유신정권 체제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던 김모(80)씨의 사건 등 2건의 재심청구 사건에 대한 심리가 열렸다.

이들 두 사건 모두 대통령 긴급조치의 위헌성, 긴급조치가 사법적 심사 대상인지 여부에 대해 문제제기, ‘긴급조치 9호가 헌법상 적정절차에 위반돼 무효에 해당한다’며 재심을 청구한 사건이다.

김씨는 지난 1974년 12월 유신헌법과 대통령 긴급조치 9호로 정부 비판이 원천적으로 금지됐던 당시 시국을 비판했다는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이에 따라 1975년 1월 8일 당시 임실초등학교 교사직에서 의원면직(해고) 됐고, 같은 해 8월 복직신청서를 교육당국에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유는 당시 정권 실세였던 김종필을 매국노로 비난하고, 민청학련 사건(1974년) 진상규명,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공개재판(1975년), 박정희 대통령 부정 등의 내용이 담긴 복직신청서가 제출됐다는 이유였다.

이에 1975년 9월 공안당국에 의해 구속돼 1976년 1월 15일 전주지법에서 징역2년에 자격정지 2년의 유죄를 선고받았다.

결국 김씨는 1977년 10월 15일 모든 형기를 종료하고 출소했지만 억울함을 풀어낼 길 없었고, 36년이 흐른 80살 촌로가 되어서야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에 대한 올바른 재판을 요구하는 재심을 청구하게 됐다.

 김씨와 함께 청구된 사건은 1978년 8월 16일 유신헌법 철폐를 주장하며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후 수감 후유증으로 2010년 6월 망인이 된 다른 김모씨를 대신해 아내인 또 다른 김모(56·여)씨가 청구한 재심사건이다.

이들이 재심을 청구한 배경은 유신헌법 당시 대통령 긴급조치 자체가 위헌이라는 대법원의 판단에 의해서다.

한편, ‘대통령 긴급조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제정한 유신헌법 53조를 바탕으로 1호~9호까지 발령됐고, 긴급조치 9호는 집회·시위 또는 신문·방송에 의해 헌법 폐지를 청원·선포하는 행위를 금지한 조항으로 이를 어기면 당시 징역 1년 이상에 처하도록 했다.

/윤승갑기자 pepe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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