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전북의제21 기획연재 / 5.생기발랄 CSA

▲ 농사꾼 진현오씨는 "'생기발랄 CSA'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아닌 식구라는 이름으로 만나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식구(食口)란 한집에 살면서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말한다. 진안과 전주, 서로 다른 곳에 살고 있지만 같은 음식을 먹는 식구들이 있다고 한다.

‘생기발랄 CSA’라는 모임을 이끌어가고 계신 농사꾼 진현오님을 만나뵈었다.

  - '생기발랄 농사꾼들'과 CSA 모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 생기발랄농사꾼들은 진안에서 수돗물 불소화 투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면서 만난 사람들이예요.  백운, 마령, 성수에 인접해 살고 있는 5가구가 자연스레 모여 2012년 1월부터 모임을 시작했어요.

다른 분들은 저희가 얼굴도 닮았다고 하는데 다들 유기 이상의 농사를 지으며 재미있게 살자는 삶의 지향점이 비슷한 사람들이라 그런 것 같아요. 작년에는 직접 도시에 장터를 꾸렸는데 아는 분들이 애용 해 주셨어요.

그 과정 속에서 우리 농산물을 장기적으로 어떤 분들과 어떻게 나눌까 고민을 하게 되었고 CSA(공동체지원농업,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형태의 나눔 방식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올 4월부터 5가구의 시골식구와 10가구의 도시식구가 실험적으로 작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 꾸러미 사업과 조금 비슷한 것 같은데 다른 점은?

▲ 꾸러미도 CSA의 한 형태이지만 저희가 하고 있는 나눔 형태는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유기농 이상의 농사를 짓는 소규모 농가와 소비자가 만나고 있는데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아닌 식구라는 이름으로 만나 시골 식구는 도시 식구의 건강한 밥상을 책임지고, 도시 식구는 일정액의 회비로 시골식구의 생활을 지원하는 것이죠. 가장 큰 차이는 지속적인 만남과 교류가 아닐까 싶어요.

얼마 전에 모여 감자도 캤고요, 요즘은 바빠서 자주는 못하지만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서로의 일상을 나누기도 해요. 공급방식도 택배가 아닌 직접 얼굴을 보고 전하고 있습니다.

- 처음부터 이런 농사를 계획하고 시골생활을 시작했는지?

▲ 학교생활을 마치고 도시에서 직장을 조금 다녔었는데 우연히 “녹색평론”이란 책을 접하게 됐어요. 거기에 제 모든 고민에 대한 답이 있더라고요. 농업이라는 것이 참 중요하고 나와 잘 맞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귀농학교를 다니고 이듬해인 2001년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농사를 지으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 같아요. 요즘은 유기농업을 넘어서는 농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5~6년 전부터 논에는 외부의 것들을 투입하지 않습니다.

비료는 물론이고 퇴비도 넣지 않고 있어요. 작년부터는 고추와 마늘밭에 비닐 멀칭을 하지 않고 볏짚을 덮었지요. 이렇게 하나씩 작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 유기농업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점점 다양화되는데 힘든 점은?

▲ 유기농업도 기술이 많이 발달해서 대규모 유기농가가 많아졌지요. 생계를 위해서는 소득이 필요하니까 대규모 유기농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돈이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유기농업의 원칙에 맞게 농사를 짓는다면 그에 맞는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옳겠지요. 처음엔 생협이라는 조직을 통해 관계형성이 가능했지만 요즘은 소규모 다품종 유기농 생산자들을 반가워하지만은 않아요. 생협에 물품을 내려면 품목의 규모화, 단일화가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CSA라는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 도시 식구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는지?

▲ 우리가 하고 있는 CSA형태의 나눔은 도시 식구에게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이에요. 시골식구에게는 생산물을 누구와 나누는지가 내가 농사를 짓는 것과 직결이 되거든요. 지금도 시골식구들은 꾸러미가 나가는 날이면 1차 농산물을 어디까지 손질해서 보내야할지, 집에서 밥을 해먹는 횟수가 많지 않다던데 얼만큼을 보내야 도시식구들이 부담 없이 맛있게 먹을까, 하는 걱정을 해요.

지난번 물품에는 달팽이와 청개구리가 열무, 상추와 함께 갔다고 하는데 저희의 바람은 생활패턴과 문화의 변화가 함께 전해졌으면 합니다.

단순히 시골식구의 생활을 지원하면서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는 차원이 아니라 가족 간에 밥을 해먹으며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고 이웃과 김치도 담그고 요리법도 개발하면서 공동체 문화를 형성해 가는거죠. 지속가능한 농업을 지원하기 위해 일부의 돈을 지불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삶의 패턴과 관계의 변화는 쉽게 오지 않아요. 그만큼 도시 식구들이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농산물은 비탄력적이에요. 예를 들어 100개가 필요한데 101개가 생산되면 가격이 폭락하고 99개가 생산되면 폭등을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농업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고. 농업과 식량자급률이 아주 중요하지만 각 분야의 노력과 실천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지속가능한 농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농민들과 도시의 소비자들이 운동차원에서 시도해보는 것이 CSA라고 할 수 있겠죠.

아직은 생소할 수도 있지만 사람과 사람이 직접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재미있는 꺼리가 많이 생길 거예요.   인터뷰 내내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 얼굴을 보면 그는 생기발랄 농사꾼임이 틀림없었다.

요즘 농산물은 겉 포장만 보면 어디에 사는 누가 생산했는지 쉽게 알 수 있는 ‘얼굴 있는 먹을거리’가 많다. 하지만 어떤 마음과 어떤 표정으로 농사를 짓고 계신지는 알 수가 없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보다는 진짜 얼굴을 아는 먹을거리 운동이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우리 농업에 책임감을 더해 열심히 살고 있는 생기발랄 식구들을 응원한다.

/조미정(전북의제21추진협의회 부장), 이민경(전주의제21추진협의회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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