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후. 마주 앉자마자 그룹 '원더걸스' 멤버 선미(21)는 기쁨에 겨워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3년7개월 만인 그날 정오에 발표한 솔로 데뷔싱글 '24시간이 모자라'가 주요 음원차트에서 실시간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막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 이상 차트에서 제대로 된 1위 가수를 내놓지 못한 JYP엔터테인먼트의 비밀병기다웠다. 27일까지도 여러 음원차트에서 정상에 올라있다.

선미는 "사실 '24시간이 모자라'를 3월에 처음 받았으니, 지겹게 들었지요. 그런데 오후 12시 땡 하고 음원이 나온 뒤 들어보니 새롭게 다가왔어요. 너무 신기하고 그랬어요"라면서 들뜸과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음원 발매일 약 1주 전부터 무대 활동을 시작하면서 내내 들던, 음원 순위 걱정이 단숨에 해결된 순간이다.

오랜만에 미디어를 만나면서 처음에는 너무 떨려 '청심원'까지 먹었다는 선미는 그러나 신기하게도 '무대 위에만' 올라가면 거짓말 같이 "떨리는 것이 없어진다"며 눈을 빛냈다. "쌓인 것을 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무대에 오른 뒤 내려와도 제가 무엇을 했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마치 꿈 꾸는 것 같아요. 호호호."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선미는 "원더걸스 시절에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아이였는데 이렇게 관심을 가져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어떤 무대를 준비하기에 그렇게 오랫동안 공백기를 갖고 있느냐'는 대중의 시선이 있을까봐 부담스러웠다. "그만큼에 상응하는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장 힘들었어요. 그래서 기대감을 계속 낮추고 있었는데, 1위를 차지해 너무 감사해요."



'24시간이 모자라'는 매니지먼트사 JYP엔터테인먼트의 대표 프로듀서 겸 가수 박진영(41)이 작사·작곡을 비롯해 의상, 뮤직비디오 등 앨범 전체 프로듀싱을 맡은 결과물이다. 박진영이 여자 솔로가수의 앨범 전체를 지휘한 것은 2000년 자사 소속이던 가수 박지윤(31)의 '성인식' 이후 13년 만으로, '2013년판 성인식'이라 할 수 있다.

'성인식'처럼 노골적이지는 않다. 본래 여리여리한 느낌이 강한 만큼, 그녀의 섹시한 이미지는 차라리 깨질 듯한 것에 가깝다. 선배들이 선미에게 예쁘다는 말보다 많이 해준 "멋있는" 느낌도 있다.

"섹시한 노래인데, 그간 제가 봐온 다른 가수들의 섹시함을 흉내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빤하게 나오는 것도 싫었고요. 그래서 표현이나 감정적인 부분에서 되도록이면 무심하게 했죠. 팬들이 야함과 무심함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 같대요. 까르르르. 그것이 통했나봐요"라며 부끄러워했다.

JYP에서 '작심'하고 밀고 있는 '여자 솔로 댄스 퍼포먼스 프로젝트'인만큼 선미가 제안한 현대무용을 결합하는 등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 내로라하는 5명의 현대무용가가 안무를 만든 덕분에 다채롭기도 하다. 무대에서 뒹굴고 남자 댄서와 호흡을 맞추는 등 무대 전체를 사용, 이전과 달리 홀로 나섬에도 꽉 찬다.

소녀가 여자로 성장하는 내용의 노랫말을 퍼포먼스로 풀어냈다. '3분짜리 뮤지컬'을 보는 듯하다. 무릎을 모으고 웅크린 채 무대에 앉아 있는 동작에서 시작하고, 역시 같은 동작으로 끝나는 모습은 이야기를 열고 닫는 느낌이다.

이런 부분이 JYP 특유의 옛것 같은 음악과 어우러지며 '고전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박진영 PD님의 음악 색깔을 촌스럽다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PD님이 색깔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요. 트렌드에 맞춰 변하는 음악보다는 생명력이 길다고 봐요."

지난해 말 컴백을 결정하고 올해 3월부터 솔로 활동을 준비해왔다. 쌓은 것이 많다. 그럼에도 솔로곡으로 디지텅 싱글 한 곡 만 내놓았다. "단 한곡만으로 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라며 눈을 반짝였다.



원더걸스 원년 멤버인 선미는 2007년 이 팀의 첫 싱글 앨범 '더 원더 비긴스(The Wonder Begins)'로 데뷔했다. 이후 '텔 미' '노바디' '소 핫' 등으로 이어진 원더걸스의 전성기를 함께 보냈다. 그러다 학업 등을 이유로 2010년 1월 팀 탈퇴를 선언, 같은해 2월까지 원더걸스 멤버로 활약했다. 인기가 절정에 이른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이후 선미는 원더걸스 활동을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한 것을 만회하고자 그해 5월 고졸 검정고시를 치르고, 합격했다. 이듬해 동국대 연극학부에 입학했다.

"멤버들에게 고마웠어요. 혼자만의 시간 갖기를 원했던 상황을 이해해주고, 절 믿어줬거든요. 꾸준히 연락했고 아직까지 저를 많이 챙겨줘요. 멤버들 덕분에 공백기간이 헛되지 않았어요."

실제로 선미가 이날 오전 서울 상암동에서 팬들과 함께 마련한 '선미의 오픈 스튜디오'의 사회자는 원더걸스 멤버 유빈(25)이었다. 임신한 뒤 캐나다에서 출산을 준비 중인 원더걸스의 또 다른 멤버 선예(24)도 이 행사 도중 전화통화로 힘을 실어줬다.



선미는 데뷔 당시의 초심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고 있다. "막상 제 자신이 좋아하더라도 그것이 옆에 있을 때는 소중함과 간절함을 잘 모르잖아요. 익숙해지면, 당연하게 생각하고요. 그런데 그간 공백이 무대에 대한 초심을 되살아나게 해줬어요."

호평을 받고 있음에도 계속 욕심이 난다. "예전에는 '이 정도만 해도 됐지'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보여줄 수 있으면 더 보여주고 싶어요. 지금은 계속해도 뭔가 아쉬움이 남네요."

JYP 내부에서 처음에는 연기로 복귀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런데 제가 복귀를 한다면, 무대가 먼저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솔로 가수로, 정말 새로운 모습으로 저를 각인시키고 싶기 때문에 우선 무대에 주력할 것 같아요. 그렇다고 다른 분야에 대한 가능성을 닫아두고 싶지는 않고요."

선미의 재발견이라는 것이 가요계의 판단이다. 선미는 "지금에서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 같다"고 여겼다. "제가 무엇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어요. 지금이 처음이죠. 저도 제 색깔이 무엇인지 몰랐고, 무엇을 잘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이번에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는 지를 깨닫고 있어요."

오래 기다려준 팬들에게도 고맙다. "이 정도 성장을 했고, 성숙해졌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공백기에 배우고 찾은 모습들을 차츰차츰 보여드리고도 싶고요. 기약 없는 기다림이었는데 기다려주신 거잖아요. 그 시간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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