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말이지만 힘이 실렸다. 인자한 아버지와 같은 사람 좋은 미소도 연신 지었다. 그러다가 주제가 ‘스포츠카’로 옮겨지자 어린이처럼 흥분했다.

배우 김갑수(56)의 모습이다. 연기를 시작한 지 36년이 지났지만, 영화 ‘공범’(감독 국동석)을 잘 봐달라며 몇 차례 허리를 굽혔다. “이 영화가 잘된다고 내 인생이 얼마나 크게 달라지겠어요”라며 허허실실하면서도 “오늘 홍보일정이 끝나면 그동안 수고한 국동석 감독 저녁 좀 사 먹이려고요”라며 주위를 챙겼다.

‘공범’에도 김갑수의 성격은 묻어난다. MBC TV 드라마 ‘연애시대’에 함께 출연한 손예진과 부녀 사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아동 유괴사건 피의자로 의심을 사는 ‘순만’을 연기했다. 딸을 위해 목숨을 걸 정도로 지극정성이지만 극 사이사이 드러나는 섬뜩한 표정과 서늘한 눈매로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관객들이 범인일까 아닐까를 끊임없이 의심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그 싸움이 힘들었죠. 어떨 때는 ‘저런 아버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만들어야 하고. 또 ‘범인인가?’ 의심도 하게 해야 하고. 관객과의 싸움을 위해 계산하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그래도 (손)예진이가 더 힘들었을 겁니다. 사랑했던 아버지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니까요. 아빠가 범인이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자꾸 흔적이 보이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감정적 갈등도 심하고…. 옆에서 보는데도 고생스럽더라고요.”

두 배우의 감정 연기가 영화의 전부다. 두 배우가 영화를 살렸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현장에서도 서로에게 조심했다. 살가운 부녀관계도, 7년 만에 한 작품에서 연기하는 반가움도 나눌 겨를이 없었다. “한쪽은 공격하고 한쪽은 수비해야 해요. 현장에서 소소한 교류는 못 했죠. 또 촬영장도 대부분 집이었어요. 사람이 안에만 있으면 얼마나 답답해요. 한 곳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을 끝까지 몰고 가는 게 쉽지 않았죠.”

영화에서 김갑수는 딸을 위해서만 산다. 실제 집에서는 어떤 아버지일까? “순만처럼 진한 부성애를 보이지는 못해요. 대신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간섭하지 않는게 제가 딸을 사랑하는 방식이죠. ‘후회하지 않도록 해라’는 말을 해요. ‘살면서 이건 해보고 싶었는데 집에서 못 하게했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거든요. 이후 결과는 본인이 받아들여야겠죠”라는 가르침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항상 걱정이죠. 사회가 어렵잖아요.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패배자처럼 되니 큰일로 느껴지기도 해요. 일등이 아니면 안 되는 사회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걱정되고요. 마음이 아파요. 누구나 일하는 건 똑같고 나머지 시간은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죠. 아르바이트가 직업이 되는 세상이예요. 이게 어떻게 현실일 수 있죠?”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사회는 사람에게 어떤 위치에 서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저같은 배우는 누가하죠? 허허.”



김갑수는 1977년 연극배우로 데뷔해 ‘연기’ 한 길만 팠다. 익숙할 법도, 자만할 법도 하다. 하지만 김갑수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젊은 후배들이 ‘선배님은 대본만 보면 딱 아시죠?’라고 물어요. 그러면 저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충분히 생각한다’고 답하죠. 연기는 기술이 아니거든요. 오래 연기를 했지만 똑같은 인물을 맡은 적은 없어요. 상황도 다르고 이야기도 다르죠. 다른 걸 연기했기 때문에 매번 작품을 만나면 고민을 해요. 후배들은 그런 제 모습을 보고 놀라고. 제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가…”라고 고민한다.

“이 영화만 봐도 그렇죠. 외로웠어요. 부성애도 있고요. 복합적으로 담아내야 하는데. 아휴, 어려워요.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나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기했어요. ‘순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를 되물었어요.”

이런 감정놀음에 지친 적도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일도 줄였다. “내 감정을 쉬게 해주고 싶었다”는 마음에서다. “너무 오랫동안 쉬지 않고 연기를 해오니 힘들고 고되더라고요. 매일 촬영장에 나가 연기하니 하루는 대본을 보는데 죽을 것만 같았죠. 감정을 움직이지 않고 일상을 살고 싶다는 열망도 들더라고요. 그래서 끊임없이 해오던 일에 조금 여유를 갖기 시작했죠”라고 털어놓았다.

자연스레 ‘연기’ 중심이던 삶이 ‘가족’으로 옮겨졌다. “전에는 연기가 ‘내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이었다면 이제는 ‘가족과 어떻게 살아야 할까’의 생각이 깊어졌죠. 아내와 산책도 하고 근처 커피숍에서 차도 마셔요. 어릴 때 굶어가며 연극을 하고, 작은 배역을 위해 연습하고 뛰어다녔던 열정이 지금도 있는지 되묻게 되더라고요. 어느덧 연기를 좀 더 편하게 하려는 것 같고요. 쉬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자 했어요”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저의 원동력은 ‘아직도 연기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 지금까지 해왔죠. 그 마음을 잃지 않게 위해 노력 중이에요.”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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