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펀치 한 방이었다.

개그맨 윤형빈(34)이 9일 밤 서울 방이동 올림픽홀에 설치된 옥타곤에 섰다. 저돌적인 상대방에게 고전하다 1라운드 종료 50여초를 남기고 라이트 훅을 상대의 턱에 꽂았다. 공격하려고 들어서던 일본의 다카야 츠쿠타(23)는 그대로 쓰러졌다.

1라운드 TKO승으로 윤형빈의 종합격투기 데뷔무대가 끝났다. 2011년 7월 일본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여성 격투기 선수 임수정(29)이 일본 남자 개그맨 3명과 불공정 격투로 당한 부상과 수모, 경기 전 윤형빈을 두고 "게이 같다"는 다카야의 발언이 오버랩되는 통쾌한 승리였다.

"다니던 학교에서 싸움을 제일 잘했다는 이야기를 부정하지 않겠다."

윤형빈이 옥타곤에 서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2005년 KBS 개그맨으로 데뷔 2TV '개그콘서트'의 '봉숭아 학당'에서 '왕비호'로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2월 KBS 공채 동기생으로 2006년부터 연인 사이였던 정경미(34)와 결혼에 성공하며 행복해했다.

하지만 윤형빈은 "식상하다"는 지적에 막을 내린 '왕비호' 이후 내세울 캐릭터를 선보이지 못했다. 2TV '남자의 자격'은 저조한 시청률, 소재 고갈 등을 이유로 막을 내렸고 지난해 5월 '개그콘서트' 복귀 코너 '살아있네'도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조기 폐지됐다. 호감이었던 '왕비호' 윤형빈은 잊히고 있었다.
 

"두려움에 맞서는 순간을 만나고 싶었다."

윤형빈은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2009년 종합격투기를 시작, 2011년부터 선수 데뷔를 준비했다. 지난해 10월 30대의 늦은 나이에 로드FC와 계약을 맺고 데뷔를 선언했다. 개그맨 이미지가 희석되더라도 두려움에 맞서고 싶다는 각오였다.

도전을 결정하는 순간이 곧 두려움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평소 80㎏ 중반대였던 윤형빈은 계체량 통과를 위해 살인적인 체중감량을 시도했다. 하루 만에 6㎏을 빼기도 했다.

대중은 꿈을 향한 도전에 박수를 보냈지만 결과를 말할 때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부인 정경미도 마찬가지였다. 오래전부터 종합격투기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말에 데뷔를 말리지는 않았으나 무대를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경기 당일은 오히려 그동안 자신을 따라다닌 두려움을 떨쳐내는 시간이었다. 윤형빈은 한국에서 열린 한·일전의 특성상 엄청난 응원을 등에 업고 무대에 섰다. 이경규·전현무·이윤석·낸시랭 등 동료들이 관중석에서 열광했다. 그리고 윤형빈의 카운터 펀치를 봤다.

윤형빈은 승리 후 "정경미에게 늘 고맙고 미안하다. 가장 큰 응원군이자 지원군"이라며 애정을 표했다. 경기 후 누리꾼들은 "앞으로 윤형빈이 개그할 때는 재미없어도 웃겠다"는 등 호평을 쏟았다. 경기 이튿날까지 이어지는 환호다. 윤형빈이 옥타곤 안팎으로 카운터 펀치를 날린 셈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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