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커피를 내리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갑자기 행복감이 밀려올 때가 있어요. 저도 모르게 ‘아, 좋다!’ 혼잣말이 나올 정도로….”

엄정화(45)는 “서른 중반이 돼서야 행복을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1993년 연예계에 데뷔해 ‘하늘만이 허락한 사랑’ ‘배반의 장미’ ‘초대’ ‘포이즌’ ‘다가라’ ‘디스코’ 등 히트곡과 ‘결혼은 미친 짓이다’ ‘싱글즈’ ‘홍반장’ ‘해운대’ ‘댄싱퀸’ 등 출연 영화의 연이은 성공으로 일찌감치 여왕이 된 그녀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불안에 떨었다. “인기에 연연하고 조바심을 내면서 앞만 봤다. 시간을 즐길 줄 몰랐고 다른 걸 볼 여유도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에서야 “주위를 돌아볼 수 있게 됐다”고 고백했다.

사랑에도 여유가 생겼다. “10대 때는 사랑을 아예 몰랐고 20대에는 올인하며 사랑에 뛰어들다가 다치기도 했어요. 30대 때는 정말 편한 사람을 찾기 위해 헤매다가 실패했죠. 영화를 보면 ‘내 나이에는 상처 같은 건 잘 안 받아’라는 대사가 있어요. 어떻게 상처를 안 받겠어요? 여전히 아프지만 익숙하다고 달래는 거죠. 더 솔직하고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을 기다리면서요.”
 

13일 개봉한 영화 ‘관능의 법칙’(감독 권칠인)은 엄정화의 현재와 닮았다. 엄정화는 영화에서 결혼보다는 일의 성취가 우선인 방송사 PD ‘신혜’를 연기했다. 5년 만난 같은 회사 상사의 결혼식에 참석해 후배인 신부와 사진을 찍을 정도의 대범함이 있다. 겉은 강하지만 속은 갑작스레 찾아온 연하남의 고백에 설레며 뜨거운 사랑을 꿈꾸는 40대 골드미스다.

‘신혜’처럼 결혼에 조급해하지는 않는다. “일 때문에 결혼을 안 한 건 아니다”면서도 “꼭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또 지금까지 솔로인 것에 대해 후회도 없다. 연애의 결과가 결혼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결혼은 정말 사랑해서 모든 걸 바칠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다.

20대에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촬영하며 결혼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돈과 사랑, 능력, 그리고 결혼의 본질을 생각했다.” 30대에는 ‘싱글즈’를 통해 홀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 40대에 이르러서는 ‘관능의 법칙’으로 우정과 사랑을 되돌아봤다.

“이 영화를 하면서 40대 얘기를 하는 게 힘들어요. 여전히 나이에 민감하다는 걸 느끼죠. 이 나이를 바라보며 갖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신체적으로도, 외형적으로도 달라지기도 하죠. 하지만 바라보는 시각이 가장 커요. 우리는 그런 시선에 움츠러들어요. 시대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엄정화는 “제 주위 친구 중 결혼 안 하고 자기 일에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라며 뽀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젊음을 유지하고 있고 어린 사람들과 사랑도 뜨겁게 해요. 40대, 일도 사랑도 왕성한 시기예요.”

“주위 시선에 영화 출연이 망설여지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다양한 역할이 많은데 굳이 이 나이를 표현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나는 영화배우니까 장르에 갇히기 싫었다. 그렇다고 지금 20대 역할을 할 것도 아니고. 많은 역할을 연기하고 싶었다.”

연기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엄정화는 “일이 좋다. 아무래도 사랑하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주변에서는 쉬면서 일하라고 걱정해주세요. 충분히 쉬고 있는데 말이죠. 일할 때 제 모습이 너무 좋아요. 여배우로 살 수 있어서 감사하기도 하고요.”

상처도 받았다. 하지만 연연해하지 않는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받았던 상처는 나의 꿈으로 치유할 수 있는만큼이었다. 내가 하는 일의 즐거움에 비할 수는 없다. 또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랑받으면 기가 채워져서 예뻐진다는데 그 느낌을 알 것 같다. 얼핏 마주치는 눈빛에 에너지가 생길 때가 있다”고 긍정했다.

“윤여정, 장미희, 이미숙 선배님, 최화정 선배님을 보면 힘이 돼요. 멋지게 가고 있는 분들만 봐도 힘이 생겨요. 저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고 바랐다. “배우로서 감독들이 같이하고 싶어 하는 정말 좋은 배우, 어떤 역할에도 거짓말하지 않는 배우”가 최종 꿈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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