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일어났던 세 건의 살인사건과 한 건의 자살사건을 다룬, 중국의 현실을 직시하는 영화가 27일 개봉한다. 중국영화 6세대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지아장커(44) 감독의 ‘천주정’(天注定·A Touch of Sin)은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오르고 각본상을 탄 걸작이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아부다비영화제에서도 최고작품상과 함께 상금 10만 달러를 받는 등 세계를 돌고 돈 이 영화가 중국에서는 상영이 금지된 것으로 전해진다. 대만 금마장 시상식에서 영화음악상과 편집상을 받았을 때도 중국정부가 지아장커 감독의 참석을 막았다는 소문이 났다.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가 중국언론에 이 영화에 대한 기사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는 소식도 흘러나오고 있다. 검열당국의 삭제와 수정을 거쳐 지난해 말 개봉한다는 보도도 있었으나 아직까지 중국 극장에 걸리지 못했다.

다시 ‘지하전영(地下電影)’이 된 셈이다. 1989년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무력진압한 6·4 톈안먼 사건 이후 등장한 6세대 감독들은 사회의 비주류를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그린 작품들을 만들어 상영금지처분을 받아왔다. 수년 간 연출금지 명령을 받은 감독도 있다. 지하전영, 즉 언더그라운드 영화라 불려온 이유다.

영화의 소재들은 국내 매체에도 보도된 적이 있는 충격적 사건들이다. 2001년 중국 북부 산시성 아여우커우촌 주민 14명이 학살된 사건은 광산채굴권 등을 둘러싼 분쟁 및 촌정부 관리들의 부패와 전횡에서 비롯됐다.

2012년 경찰에게 사살된 저우커화는 2004년부터 8년간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현금인출자들을 상대로 총기 강도살인을 벌여왔다. 11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양쯔강 남서부 충칭 빈농 출신의 ‘농민공(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중국의 빈곤층 노동자)’이었다.

2009년 중국 중부 후베이성에서 일어난 호텔 여종업원 덩위자오 사건은 자신을 성폭행하려 한 공산당 간부를 살해한 것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며 석방된 스물한 살 여인의 실화다. 중국 트위터인 ‘웨이보’에 퍼진 얘기로는 영화에 묘사된 것처럼 죽은 간부는 발 안마사인 덩위자오를 돈다발로 때리며 강제로 성관계를 맺으려했고 정당방위로 흉기살해하게 됐다.

‘폭스콘 자살’은 2007~2013년 애플, 노키아, 소니 등에 납품하는 세계 최대 하청업체인 대만 전자업체 폭스콘 중국 공장에서 열악한 근무 조건으로 모두 스무살 안팎 20여명의 직원들이 연쇄자살한 사건이다. ‘자유무역지대’인 광둥성 지방의 둥관은 중국 남부 해안에 위치한 아열대 지역이다. 여공들의 매춘 아르바이트도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감독은 네가지 사건들을 평행선상에 올려놓고 옴니버스식으로 엮어나간다. 그러면서도 4명의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든 스쳐지나가게 만들어 이것들이 제각각의 사고가 아닌 중국인 전체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임을 인식시킨다.

또 표피적인 현상을 그리는데 머무르지 않고 이러한 일을 저지르게 된 상황과 심리를 세심하게 포착해낸다. 그가 짚어낸 복합적인 배경과 인물들의 내면에서 터져 나온 액션들은 하나하나가 드라마가 된다.

그 과정에서 현 중국의 적나라한 모습과 혼란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흔히 ‘대륙’이라 통칭하는 거대한 땅덩어리, 한자녀정책으로 호적에 오르지 못한 이들까지 합치면 16억 명 정도로 추산되는 세계 1위의 인구를 지닌 중국에서는 그만큼 별난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고립되다시피 하거나 치안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여전하고 생활의 수준차나 문화의 층위도 제각각이다. 엄청난 부조화가 들끓고 있다.

영화 초입에 과속으로 쓰러진 트럭에서 제멋대로 쏟아져 내린 붉은 과일 더미, 외투로 덮어놓은 운전자의 시체는 중국의 현재모습과 함께 앞으로 영화에서 일어나게 되는 일들의 복선 역할을 한다. 경제개방과 더불어 고속성장의 부작용을 앓고 있는 중국의 위기와 불길한 죽음을 암시한다.

감독은 여러 영화에서 영향받은 것을 숨기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낸다. 황량한 시골마을에서 코트 깃을 세우고 무자비하게 장총을 쏴대는 광부 따하이(쟝우)는 서부극을 연상시킨다.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방랑하며 일사불란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조우산(왕바오창)은 마치 게릴라 요원 같다. 머리를 높이 묶고 절도있게 칼을 휘두르는 샤오위(자오 타오)의 모습은 무협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하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하다. 서양인들이 보기에 화가 난 듯 보인다는 얼굴이다. 오랫동안 전체주의·공산주의 체제에 젖어있던 이들의 전형이다. 사건은 절정을 향해 가는데 속내를 알 수 없어 더 무섭다. 하나같이 삶에 지쳐있는 듯, 혹은 체념이라도 한 듯 감정을 숨긴 표정 없는 이들의 돌변은 공포와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보고 전통문화를 계승해가는 과정에 감명 받았다고 고백한 지아장커 감독은 중국 고유문화의 색채를 곳곳에 삽입한다. 민속악기를 배경음악에 쓰는가 하면, 경극이 주요장면을 장식하기도 한다. 5개월간 중국을 종횡무진 촬영하면서 전통적인 중국 풍경화를 떠올렸다. 나라의 전경을 표현하고자한 고전화가들의 미학적 접근법을 도입해 중국사회를 총체적이고 시각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것과 초현대적인 것의 혼재, 서구문화의 유입 등 중국의 현재가 섬세한 터치로 묘사된 것이 뛰어나다. 외진 탄광촌에까지 중국 공산당의 아버지 마오쩌뚱의 동상이 세워진 앞에 성모자상과 수녀들도 교차한다. 문화혁명기와 별로 달라진 것 없이 허름하고 가난한 생활을 하는 이들이 대다수인데 마을 탄광을 사업가에게 넘긴 촌장은 아우디를 타고, 재빨리 자본주의를 습득한 그룹회장은 심지어 전용기를 타고 나타난다.

삼형제가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조우산의 맏형은 여전히 공산주의사상에 젖어있지만 대처에 나가보면 돈뭉치를 들고 다니는 신흥부자들 천지다. 시골에서 타지로 나간 남자들은 공장에 가고, 여자들은 몸을 팔아 에이즈에 걸리기도 한다. 홍콩과 대만 등지에서 온 사업가들에게 젊은 여자들은 갖가지 성적서비스를 제공하며 식구를 부양한다.

암표상, 불법택시기사, 통행료를 받아내려는 촌부 등 자본주의의 틈새에 끼어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는 무법천지의 실상도 그러진다. 산골마을에 새로 난 길에는 제대로 된 교통편 하나 없지만 도시에는 고속철도가 뚫려있다. 젊은세대에게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필수품이 되고 이는 또 다른 소외감의 원인이 된다.

돈이 있으면 사람을 부리고 때리거나 여자를 사거나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천민자본주의의 풍습은 공산주의체제였던 중국에서 더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세계적으로 붉은 자본주의가 원조 자본주의보다 더 가혹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부의 불균형과 극심한 빈부격차는 박탈감, 고독과 불안감을 야기하고 극한적 상황에 몰린 이들은 폭력적 본성을 드러낸다. 감독은 “언제라도 개인의 존엄성이 박탈당할 수 있기 때문에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 약자에게는 폭력만이 잃어버린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직접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간파한다.

중국의 우울한 자화상을 건조하면서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모습 또한 비쳐진다. 경제개발기 고향을 떠나 공장으로, 술집으로 노동과 웃음을 팔러 떠났던 젊은이들은 한국에도 있었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빈부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이 겹쳐지기도 한다.

‘천주정’이라는 제목은 ‘하늘에 흐르는 운명’이라는 뜻이다. 등장인물들의 살인과 자살이 각 개인만의 문제가 아님을 상징한다. 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몰고 간 현 중국사회의 폐단에 대한 비판의식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뉴시스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