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막을 내린 MBC TV 월화드라마 '기황후'는 방송 내내 높은 시청률을 보였지만, 완성도는 떨어졌다. 역사왜곡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아침드라마형 사극', '막장 사극'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MBC가 '드라마 왕국'이라는 명성을 얻은 이유는 단순히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를 꾸준히 내놓았기 때문 만은 아니다. MBC 드라마가 국내 드라마의 질적인 성장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기황후'는 이 '왕조'가 몰락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였다. '기황후'는 단기적으로 MBC에 돈을 벌어 줬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MBC 드라마의 여전히 밝지 않은 미래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좌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팩션' 사극, '퓨전' 사극이라고 불리는 드라마에는 '역사 왜곡'이라는 시비가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MBC '주몽' '선덕여왕', KBS '천추태후', SBS '서동요' 등 지상파 3사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문제가 됐던 부분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역사에 상상력을 더했다'라며 사료와 정반대의 이야기를 편리하게도 드라마화 하거나, 다른 시기를 산 두 인물을 같은 시대에 등장시키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기황후'의 역사 왜곡은 이전 논란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었다. 역사 인물의 이름만 따왔을 뿐 실제 역사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가 51회 내내 이어져 '팩션'이나 '퓨전'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였다. 차라리 '창작' 사극이라는 모순적인 말이 어울렸다.

기황후와 기씨 일가는 고려의 왕권을 흔들었던 인물이다. 공민왕의 반원정책으로 오라비 기철이 죽자 그녀는 고려를 침공하려 했다. 고려 입장에서 볼 때 기황후는 악녀다. 기황후의 매국 사실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지만, 우리나라 사극이 '영웅'으로 다룰 만한 자랑스러운 인물은 전혀 아니다.

충혜왕에 대한 '기황후'의 왜곡된 묘사는 더 심각하다. 충헤왕은 폭군, 패륜아였다. 이웃 나라 공주를 겁탈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새어머니와 장모까지 범했다. 살인을 일삼고, 술과 여자에 빠져 원나라에 의해 폐위됐다. 하지만 제작진은 그를 한 여인만 바라보는 로맨티스트로 만들었다. 비난이 일자 충혜왕을 '왕유'라는 가상인물로 대체했다. 제작진이 애초에 '사극'을 만들 의도가 없었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뿐만 아니라 '기황후' 속 거의 모든 에피소드는 창작된 것이다. '역사 왜곡' '역사 비틀기' '역사의 또다른 해석'이라는 말보다는 '판타지 사극'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것이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기황후'에 이르러 정점에 달한 '팩션' '퓨전' 사극의 역사 왜곡이 "비슷한 종류의 역사 드라마에 대한 대중의 피로감을 높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와 드라마 속 역사를 비교하거나 내가 모르던 역사를 알게 되는 재미로 사극을 보는 것인데, 최근 방송되는 대다수의 사극은 역사 왜곡 정도가 심해 더이상 볼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정통 사극을 내세운 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에 대한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를 증명한다.

핍박 받는 여자가 있다. 이 여자는 결국 버려지고, 복수를 꿈꾼다. 성공한 여자는 마침내 복수에 성공한다. 이 여자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 출생의 비밀을 더한다. 이제는 거의 공식화된 막장 드라마 혹은 아침드라마의 기본 서사다.

'기황후'는 이 막장 서사를 한 치 오차도 없이 온전하게 반복했다.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막장'이라는 코드를 가져왔다는 것 만으로 '기황후'를 비판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방송 중인 드라마 가운데에도 이같은 '막장' 코드를 뼈대로 삼고 있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기황후'의 '막장'에 대한 비판은 이 드라마가 택한 장르와 방송 시간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먼저, 사극이라는 측면이다. 사극은 콘텐츠 부족에 시달리는 국내 드라마 시장에서 그나마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창구였다. 가장 가까운 예로 KBS '추노', SBS '뿌리깊은 나무', MBC '선덕여왕'을 들 수 있다.
'추노'는 민초의 삶이라는 주제를 권력과 사랑 그리고 복수로 풀어내 호평받았다. '뿌리깊은 나무'는 '올바른 정치란 어떤 것인가'라는 큰 주제를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과정을 토대로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선덕여왕' 또한 '미실'과 '선덕여왕'의 대립을 통해 '국가와 지도자'라는 담론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기황후'는 어떠한가. 이 드라마에는 권력을 지키려는 사람과 차지하려는 사람, 음모와 계략만이 판을 칠 따름이다. 기황후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이 죽음으로써 극에서 하차한 것이 우연은 아니다. 시대적인 배경때문에 권력을 잃은 자가 죽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나 이런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누군가가 죽지 않고서는 극이 진행될 수 없게 만든 과장되고 극단적인 전개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타임워프'와 스릴러를 결합한 SBS의 '신의 선물-14일', 대통령 암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3일 간의 이야기를 담은 SBS '쓰리데이즈', 스무살 피아노 천재와 40대 여성의 사랑을 높은 완성도로 그리고 있는 종합편성채널 JTBC의 '밀회' 등 지상파 3사를 비롯해 종합편성채널은 밤 10시대 드라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콘텐츠 부족에 시달리는 드라마 시장이 유일하게 장르적인 도전이 가능한 시간대다.

'기황후'가 안타까운 까닭은 여기에 있다. '기황후'에는 이런 새로운 시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국내 드라마가 이제는 벗어던져야 할 좋지 않은 관습들을 그대로 답습했다. 이것은 역시 '막장'이라는 코드에 기대있다. 문제는 '기황후'의 뒷걸음질이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못지 않은 시청률을 보여줬다는 점이고, MBC를 포함한 타방송사도 시청률을 위해 이런 시도를 다시 한 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기황후'의 성공으로 이런 드라마가 또 만들어질 것"이라며 "한국 드라마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시도"라고 평했다.

/뉴시스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