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났다.

그는 믿었던 사람, 자신이 멘토로 생각했던 마이크 마쿨라가 애플 이사회에서 경쟁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애플에서 밀려났다.

인생에서 가장 큰 좌절을 겪었다.

1985년이었으니 그의 나이 30세였다.

그날 저녁, 애플을 창업했던 아버지의 집 창고로 돌아가 그는 쓰디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아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가볍게 그의 등을 두드려줬다.

잡스는 성격이 독단적이었고 자기중심적이었다.

또 성격이 괴팍했고 워커홀릭이었다.

아이작슨의  스티브잡스 전기 및 여러 권의 스티브 관련 서적을 보면, 그의 생활 양식과 사고 방식 역시 특이했다.

육식을 하지 않았지만 일본 스시 초밥은 먹었고 대부분의 식단은 과일로 채웠다.

그의 주변에는 친구도 별로 없었다.

회의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해고했다.

나중에는 스트레스에 지친 자신의 측근 인사가 미쳐 버리기도 했다.

잡스는 죽음에 임박해서 그런 일들에 대해 사과했다고 한다.

잡스는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전 세계 컴퓨터 시장을 완전히 변화시켜 버렸다.

그 같은 잡스의 자신감은 세계 최대 컴퓨터 제국인 IBM에 도전장을 던지는 사례로 이어졌다.

그는 1981년, 월스트리트 저널에 ‘감히’ IBM을 조롱하는 듯한 내용의 전면광고를 실었다.

모두 30세 이전이었다.

1996년, 애플은 이사회를 열어 잡스 복귀를 결정한다.

잡스는 11년 만에 애플로 돌아갔다.

잡스는 복귀한 뒤 애플을 세계 최고 기업가치 수준을 가진 회사로 만들었다.

그는 복귀 후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연달아 출시했고 유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그 자신 역시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6.4 지방선거에서 정당을 떠나거나 쫓겨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들이 많다.

어떤 이유에서건 당 공천장이 없다는 건, 선거에서 매우 불리하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었던 인사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공천장 없이 무소속으로 선거를 치른다는 게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러나 잡스와 같이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을 겪게 되면, 더 단단해지기 마련이다.

지역 발전에 대한 아쉬움과 새정치연합의 차기 대선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무소속 후보들과 그 참모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스티브 잡스를 다시 한번 공부해 보길 바란다.

새정치연합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넘쳐나는 무소속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새정치연합을 더욱 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김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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