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연못 배롱나무
연잎 사이를 스르르 지나가는
뱀처럼
연지교를 꼬불꼬불 건너갔다
허공이 낮다
연못 쪽으로 한 가지 뻗은
배롱나무가
백일홍을 수없이 달고서
짝을 찾으러 어슬렁거리는 잉어들에게
꽃잎을 배롱배롱 날리고 있다
홍련 툭툭 터지는 짧은 여름밤을 못 참겠다는 듯이
·덕진연못 :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소재.
■ 정성수의 맑은 생각 밝은 글 ■
부처꽃과에 속한 낙엽 소교목인 배롱나무는 수피가 자주빛을 띤다고 해서 옛날에는 자미나무라 불렀다.
일부지역에서는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다.
장마가 끝나고 세상 꽃들이 헐떡거리는 여름날에 수줍게 핀다.
석 달 열흘이 지나면 서러운 꽃, 백일홍. 꽃은 열흘을 못 간다는데 화무백일홍이다.
한자를 해석하면 “백일 간 핀다”는 뜻이니 꽃치고는 목숨이 참 질기다.
팍팍한 무릎으로 한세상을 건너가는 징한 세월 닮았다.
꽃말은 인연이다.
배롱나무가 사찰에 많은 것은 인연과 무욕을 추구하는 승려의 구도자적 이미지를 상징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