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여울<46>










◉시여울<46>

 

연꽃 한 송이

 

가늠할 수 없는 水深에

뿌리하나 깊숙이 심어놓고

 

微動도 없다.

-한순자의
<호수>전문

 

말 한 마디로 우주의 비밀을 가늠하고자 하는 자를 일러 시인이라고 한다. 어디 그뿐이랴.
연꽃 한 송이로 물 속 깊이 숨은 생명의 신비를 밝혀내고자 하는 언어예술을 일러 시라고 한다. 호수가 조금도 흔들림 없이 우주의 신비와 생명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는 눈을 가진 자 역시 시인이다. 우리는 시인의 눈, 시적 언표를 통해서, 또는 시인이 지닌 영묘한 감성의 파장을 통해서
현실이 외면하고 있는 우주의 신비와 생명의 본질에 다가서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시문학의 축복이다.

-해설: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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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울<47>

 

자아의 성(城) 닫고

누운 외길

 

타는 사랑 싸안고

남도로 남도로

 

누가 너에게

자학을 일러주더냐?

 

안으로 멍울진 노래

바다에 닿으니

 

아, 하마터면

눈물 보일 뻔했네.

-안현심의
<전라선(全羅線)>전문

 

고유명사는 그냥 명사가 아니다. 그냥 사물의 이름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고유명사에는
사람에 관한 정서가 담겨 있고, 그로 인하여 비롯하는 역사가 담겨 있다. ‘호남’이라든지, ‘전라도’라든지 하는 고유명사 속에는 그 명사들이 담고
있는 의미의 범주를 넘어서 그 고장 사람들의 삶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모든 육지가 바다를 향하여 달려간다 할지라도, 그 끝에 눈물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나, 아직도 단선인 전라선의 끝에 눈물이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해설:
이동희 시인

 

 

 

◉시여울<48>

 

내리막길에서는 가속이 붙는다.

발은 페달에 올려놓으면 된다//

그러나 균형은 잡아야 한다.

무엇이 갑자기 뛰어들지도 모른다.

그런 뜻하지 않은 일에도 대비해야지//

그런대로 그런대로 편안한 내리막길

바퀴살에 부서져 튕기는 햇살,

찌렁찌렁 울리는 방울//

언덕길 밑바지에선 해가 저물고

결국은, 결국은 쓰러질 줄 알면서도,

관성에 몸을 실어 제법 상쾌하게//

가을 석양의 언덕길을 굴러 내려간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가면서

지그시 브레이크도 걸어보면서.

-김종길의
<자전거>전문

 

‘사랑은 줄다리기’라는 대중가요가 유행한 적이 있다. 남녀간에 교차하는 미묘한 사랑의 심리적
측면을 간파한 내용으로, 사랑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한 쪽에서 너무 강하게 잡아당겨도, 그렇다고 해서 상대편에서
그냥 놓아버려도 줄다리기는 성립될 수 없다. 상호 적당한 당김으로 유지되는 팽팽한 장력(張力)! 이것이 유지될 때 사랑도 가능한 것이다. 어찌
사랑뿐이겠는가? 인생살이 역시 자전거 타기처럼 관성에 몸을 싣고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적당히 브레이크도 밟아가면서 황혼을 향하여 달려가는
일이 아니던가!               
-해설: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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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울<49>

 

정오의 강가엔

목마른 꿈들이 잠을 자고

엿가락처럼 늘어난 거미의 안식처엔

이름 없는 사람들이 옷을 벗고

두서 없는 하늘 한켠엔

응고된 붉은 유서들이

미로의 들녘처럼 나부끼다가

세상의 방파제 밑으로 미끄러진다.

-양윤옥의
<이름 없는 사람들>전문

 

난해함은 체험의 질량과 관련이 깊다. 경험이나 선험적 지식-schema은 이해의 지름길이다.
그러니까 어떤 현상이나 개념의 본질에 이르지 못하고 삶의 난해성에 허덕이는 독자들은 한번쯤 자신의 배경지식과 함께 체험의 질량을 점검해 볼 일이다.
목마른 생의 한낮을 무료함으로 괴로워해 본 사람은 안다. 안식의 보금자리가 거미줄 치는 상황에 놓여본 사람은 안다. 세상의 미로를 헤매다가 결국은
삶의 안전선 밖으로 추락해 본 사람만이 아픔을 안다. 그런 사람들을 일러 서민이라 한다. 우리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해설:
이동희 시인

 

◉시여울<50>

 

잎도 피지 않는 나무

캄캄한 어둠 속

가지마다 별이 가득 돋아 있다//

그 별들 너무 무거워

거뭇거뭇한 가지

툭툭 부러져 떨어진다//

이 나무 다 기울어지면

별들은 어디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한 세계가 지상에서

조용히 소멸하고 있다.

-김진경의
<고사목(枯死木)>전문

 

코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한 우주를 빼앗는 것이다’ 그렇다.
한 사람의 생명은 그 사람의 전 우주를 담은 것이다. 생명 있는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고사목 한 그루에는 그 나무의 전 우주가 담겨 있다.
현실에서 모든 물기 있는 생의 진국을 내어주고 빼앗기고 점점 고사목이 되어 가는 생활인의 존재인들 이것과 무엇이 다르랴! 그렇게 해서 우리의 삶이
한 세계를 접는다 할지라도, 마지막 남겨놓아야 할 것은 있다. 그것이 고사목과 다른 인간존재의 아름다움이다. 그를 일러 시인은 ‘별’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해설: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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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울<51>

날이 흐리고 강가로 나갔다

거룻배 몇 척이 갈매기처럼 떠 있고

밀물 든 수평선에 그리움도 푸르다.

흐린 날의 맑은 강

저만치 갈대들이 몸짓대로 서걱이고

강물에 아랫도리 씻고 씻어서

머리까지 피 맑아져 사향이 피는구나.

강은 얼마를 흘러야 죽음에 이르고

우리는 얼마를 흘러야 저 강에 이르는가.

강가를 돌아 언덕에 선다.

흐린 하늘에 갈대의

고운 피 같은 것 구름송이로 흐르고

바다 쪽으로 도요새 몇 마리 날아간다.

-우미자의
<날이 흐리고>전문

 

아름다운 서정시를 읽으면 내 삶이 아름답게 정제되는 즐거움이 있다. 알맞은 풍경과 함께 지성적
성찰이 알맞은 포인트를 갖추고 있는 한 폭 서정그림을 읽는 즐거움이다. 날이 흐릴수록 우리는 삶의 정화를 위해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그래서
생명의 모천인 강물에 오염된 욕망을 씻어내고, 생각까지 맑아지게 하여, 삶의 향기를 피우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를 부지기수로 해야 마침내 우리는
저 생명의 모천인 강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바다 쪽으로 명상의 새를 날리며 생활의 시인은 흐린 지상의 날씨를 염려한다. 그 염려가 가슴에
닿는다.                            
-해설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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