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수 언론인

올해 한국을 뒤흔든 세월호 참사와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은 공통점이 있다.

세월호 침몰은 선장부터 청해진해운, 해경, 해양수산부, 청와대까지 모두 부실한 초동대응으로 전대미문의 참사로 귀결됐다.

국정농단 의혹도 지난 4월 청와대가 문건유출을 인지했을때 적절한 초동대처만 했었어도 이렇게 파문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사건의 밑바탕에는 대통령과 주변의 불통, 즉 소통의 부재가 도사리고 있다.

특히 '정윤회문건 의혹'을 계기로 박 대통령의 폐쇄적 이미지가 국민에게 강렬하게 각인됐고, (정치성향과 관련없이) 여기저기서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박 대통령이 불투명한 인사시스템 등 폐쇄적인 국정운영과 결별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비선의 국정개입 의혹은 진보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한뒤 보수언론에서 이를 입증하는 취재결과물을 내놓는 등 언론끼리 선의의 경쟁을 하며 언론 본연의 '핑퐁게임'을 하는 모양새다.

이런 추세는 작금의 우리 언론문화에서는 보기 힘든 경우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은 '국가 대개조'와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력 추진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하지만 국정농단 의혹 파문에 대한 대통령과 청와대의 인식이 일반 국민 정서와 결이 다른 걸 보면 청와대부터 '대개조'와 '정상화'가 이루어져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청와대의 인적 쇄신이 가장 우선이지만, 불통을 잉태하고 있는 청와대 공간 구조도 이번 기회에 바꿔야 한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만 봐도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과 소통이 어렵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본관과 비서실이 있는 위민관과의 거리는 500m다.

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할 정도로 번거로운데 얼마나 자주 대통령과 참모들이 머리를 맞대고 시급한 국정현안을 논할 수 있겠는가.특히 이 정부 들어서 청와대 핵심 비서관들이 독대 등 대통령을 만나기가 너무 어렵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권위적인 박정희 정권 시절에도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장 방은 한 건물에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가 소통의 민주적 리더십과는 거리가 먼 상징적 공간이 된 셈이다.

구조적으로 대통령과 참모들간에 거리감이 있다보니 '문고리 비서관'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고, 시중에선 인사를 둘러싸고 문고리 3인방 개입 소문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항간에는 박 대통령 취임초기 비서실장도 문고리 3인방을 거쳐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올렸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청와대 본관은 1991년 노태우 정권 시절 길이 보존해야 할 민족문화재로 지어졌다.

하지만 웅장한 규모로 봉건군주적 위엄만 드러냈지 소통·실용과는 거리가 먼 제왕적 공간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이후 일부 전문가와 청와대 근무 경험자들 사이에서 국정 쇄신을 위해 청와대 구조부터 바꾸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일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실장을 지낸 임태희 씨는 전화 통화에서 "대통령은 핵심 참모들과 딱딱한 보고서 뿐만아 니라, 가벼운 티타임과 간단한 구두보고 등 수시로 만나 소통해야 국정이 원활하게 돌아가는데 청와대 공간구조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대통령들도 청와대의 이같은 문제점을 알고 있었으나 해결하지 못했고, 대통령을 보좌했던 사람으로서 자기 역시 책임이 있다고 했다.

박대통령이 결심해 추진한다면 국민적 지지를 받을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미국 백악관은 웨스트윙에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를 비롯해 핵심참모들의 사무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독일, 영국 등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통치권자의 국정철학이 고르게 전달되고, 반대로 귀를 열고 민심을 잘 듣기 위해서다.

박 대통령이 미국대통령처럼 참모들과 소파에 자유롭게 둘러앉아 격의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싶다.

청와대라는 '제왕적 공간'이 부르는 '불통의 저주'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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