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스마일' 집념의 정치인이다
'미스터 스마일' 집념의 정치인이다
  • 김일현
  • 승인 2015.01.1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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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온화한 리더십 가진 5선 화려한 경력의 정치인 이전투구 정치판 속에서도 원칙-신뢰 속 선당후사 실천
▲ 항상 온화한 매력이 흘러나오는 미소를 띠고 있으나 목표를 향해서는 끈질긴 항해를 마다하지 않는 정세균의원.

 

“왜 그렇게 맹목적으로 지지하나? 언론이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요?” 정세균 의원이 중앙 선거에 나설 때마다 여기저기서 지적 또는 항의성 전화가 많다.
“내가 조중동도 아니고 전북 신문 기자가 전북 정치인 대세(大勢)라고 쓰지, 그러면 뭐라고 씁니까? 이왕 선거에 나섰는데 돼야 할 것 아니요.” 대세든 아니든, 정세균 의원이 출마했다면 지역 언론은 당연히 밀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새정치민주연합 정세균 상임고문. 그는 도민과 전북 언론을 기반으로 큰 정치인으로 성공했다.
현재는 전북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중앙에 특별히 기댈 곳 없는 전북은 정세균에게 많이 의지해 왔다.
정 고문 역시 고향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지역 현안을 챙겼다.
지난 해 12월, 정 고문은 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의 대표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그는 야권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중진으로 남게 됐다.
당내 빅3 중 문재인 박지원 두 명은 출마를 강행했고 선당후사를 실천한 정 고문만 선거판에 들어가지 않았다.
수많은 후배 정치인들이 정치인 정세균을 다시 보고 있다.
정세균은 전당대회 선거 불참으로 적지않은 정치적 손실을 입었지만, 선당후사라는 정세균식 정치를 다시 한번 실천했다.
그의 선당후사,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이번 호 제작을 위해 정 고문과는 전화통화나 인터뷰를 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20년 지켜 본 정 고문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해보기 위해서다)
/편집자주  

 

▲남성상(男性像)-미스터 스마일+@가 필요하다.

국회 5선이나 당 대표, 당 의장, 산업자원부 장관, 당 대선 경선 후보, 이런 화려한 경력은 정세균이 누구인가를 알게 해 준다.

이전투구 정치판에서 그는 원칙과 신뢰 그리고 선당후사를 직접 실천해 오늘의 자리에 올랐다.

이러한 이력은 정치인 정세균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정치인보다는 인간적 품성 면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품, 하지만 목표를 향한 끈질긴 집념 그리고 의외의 승부수. 보통 남자가 갖고 싶어하는 대부분의 기질을 갖고 있다.

정세균 고문은 자주 웃는다.

그래서 미스터 스마일로 불린다.

억지로 웃는 웃음은 표시가 난다.

정세균의 웃음은 여유가 있고 솔직하다.

상대를 편하게 만든다.

정세균은 또 온화하고 합리적 리더십을 갖고 있다.

따뜻하고 편안한 스타일이어서 많은 정치인의 지지를 받는다.

중앙당 대표를 세 번이나 했던 바탕이다.

이런 품성은 긍정적 측면과 함께 일정부분 약점이 되기도 한다.

우리 국민들은 강한 정치인을 원한다.

인물평은 각기 다르겠지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은 카리스마가 강하고 매우 단호하며 화를 자주 냈다.

‘배신’에 대한 응징도 철저했다.

리더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겁을 내고 더 충성하고 더 잘 따른다.

스마일링, 온화한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다.

반면 대외 여론 측면에서는 부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

SK는 탄탄한 당내 지지도, 끈끈한 당원-대의원 라인을 갖고 있다.

냉철한 카리스마가 조금 더 보태진다면, 현재의 여론 지지율은 수직 상승할 것이다.

2015년 범야권 이합집산,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 2017년 대선 가도. 정치일정이 빡빡하다.

SK가 2017년을 염두하고 있다면 기존의 스타일에 ‘차가움’을 가미하는 건 어떨까.

 

▲승부수(勝負手)-가난과 호남, 한계를 뛰어 넘다.

다행히 미스터 스마일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다.

실제로는 강하고 간혹 독해 보일 때도 있다.

그런 면은 탄탄한 내공이 받쳐주고 있어서 가능하다.

자신감이 넘치기에 얼굴에 미소가 있고 그 자신감에는 ‘도도함’이 배어 있기도 하다.

그는 애초부터 미스터 스마일이 될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전부 다 가난했다.

우리 옆 집도, 그 건너 집도, 너무너무 가난했다.

하루 세 번 밥 먹는 건 호사였다.

그래도 모두가 가난해서 그게 어쩌면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1950년, 정세균이 출생한 장수 장계면 개안들의 당시 현실이었다.

6.25 전쟁 통에 4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났으니 먹고 사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초년 정세균은 정말 가난했던 것 같다.

돈이 없어서 중학교는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고등학교는 세 군데를 다녔다.

무주 안성고, 전주공고 그리고 신흥고였다.

공부를 잘 해서 신흥고 최초의 국회의원이 돼 모교에 보답했지만, 청소년 시절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었겠는가.가난했다가 성공한 인물들은 유혹에 쉽게 노출된다.

그러나 정세균은 국회의원이 돼서도 유혹을 거부한 대표적 정치인이 됐다.

1996년.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은 국회 재경위원이었던 정세균에게 로비를 시도했다.

당시 정태수 지시를 받은 이 모 사장은, 국회내 고대교우회모임 의원초청 골프 등을 통해 알았던 정 의원에게 1,000만원을 건넸다.

정세균은 거절했다.

이후 이 같은 사실이 검찰 조사로 밝혀지면서 정세균은 국회 유일한 청렴의원으로 명성을 높였다.

다른 정치인은 다 받는 돈, 그는 왜 받지 않았을까. 이른바 한보그룹 로비 사건이었다.

2009년. 정세균 당 대표는 호남 지역구 불출마, 수도권 출마를 선언했다.

진무장에서 내리 4선을 했고 쉽게 5, 6선 고지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지역구를 떠나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면서 그는 지역적 한계 역시 뛰어넘었다.

 

▲목적지(目的地).

정세균은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꼭 들어맞겠다.

외유내강은 신뢰와 추진력, 강인함이 있어야 가능하다.

1973년. 고려대 총학생회장 선거. 그는 당선되기에는 쉽지 않은 구도에서 출발했다.

전북 출신이라는 지역적 한계, 숫적 열세로 크게 불리했다.

전북 출신이 총학생회장이 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치밀한 전략으로 타 지역 후보들을 꺾고 총학생회장이 됐다.

정세균은 그 때 추진력과 타협, 협상을 배웠고 국회 5선이 된 지금도 협상을 중시한다.

2009년. 당 대표 정세균은 MB 악법 저지를 위해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직권상정과 강행처리에 반발해서다.

정 대표는 의원직 사퇴서도 냈다.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해 모든 것을 던졌다.

정치적 제스츄어라는 일부 지적도 있었지만 그의 진정성은 미디어법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켰다.

2010년.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재판에 정 대표는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한 전 총리는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 중이었다.

정세균은 대표 위치에서 재판정에 출석하는, 이례적 결정을 내렸다.

정 대표는 한명숙을 신뢰했고 그녀를 보호했다.

대법원은 2013년, 한명숙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정세균의 신뢰는 옳았다.

정세균.그는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새정치민주연합의 2.8 전당대회 결과는 정 고문에게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누가 당 지도부가 되든 범야권 재편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이 분당 위기에 처한다면 ‘구원투수’로 다시 한번 당 전면에 나설 것이다.

분당하지 않더라도 SK는 범야권 재편에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는 이미 선거 불출마를 통해 새로운 정치 이미지를 쌓았다.

당연히 그의 목적지는 대권이어야 하고 그래야 전북도 발전할 수 있다.

지난 해 호남 기자들과의 만남. “내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 왔다.

앞으로 무엇인들 못 하겠는가?” 정세균의 강한 욕구가 올해 활화산처럼 뜨겁게 분출할 것인지. 2017년까지 이제 2년여 남았다.

 

▲인연(因緣)-라이벌 정동영.

정세균, 정동영은 전북 정치의 핵심 패키지다.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누구보다 가까웠던 정-정은 각자의 정치 이상(理想) 실현에 충실했다.

그리고는 경쟁자가 됐다.

누가 이겼고 누가 졌는지는 결론 내릴 필요가 없다.

정-정 앞에는 아직, 새로운 정치 선택지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정세균과 정동영 그리고 여기에 묶어 정균환 전 민주당 원내대표. 이들 3인은 전북을 대표하는 3정이었다.

잘 나가는 블루칩이었다.

이들은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함께 전북정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지금은 정세균만 현역 의원이고 정동영은 탈당해 새로운 길을 모색 중이다.

전북을 대표하는 정-정이 갈라진 것은 2009년 4월이다.

미국에서 전주 재보선 출마를 선언한 DY는 귀국 후 당연히 당 공천을 예상했다.

그리고 전주를 찾았다.

그러나 당시 SK 지도부는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정동영 공천 배제를 결정했다.

정세균은 “정동영을 공천하면 정세균도 죽고 민주당도 희망이 없지만, 공천하지 않으면 정세균은 죽고 민주당은 산다”고 말했다.

당을 위해 DY를 공천하지 않겠다는 결론이었다.

정세균은 DY 공천 배제 결정과 함께 회심의 승부수를 던졌다.

자신의 탈(脫)호남, 수도권 총선 출마 카드였다.

그리고는 야당의 무덤으로 불렸던 서울 종로를 택했다.

박근혜의 대부로 불리던 홍사덕을 꺾고 SK는 정치 거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걸어온 길 

1950. 장수, 진안군 동향초, 진안군 주천고등공민학교, 신흥고
1971.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1973.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1988∼1990. 미국 페퍼다인 대학 경영학 석사
1978∼1995. 쌍용그룹 근무
1994∼현재. 고려대 교우회 상임이사
1994∼현재. (사)미래농촌연구회 회장
1995∼1996. 연청 전라북도지부 회장
1995∼2000. 새정치국민회의 진안무주장수 지구당위원장
1996∼1997.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특별보좌역
1996∼1999. 연청 중앙회장
1998∼1999. 제1·2기 노사정위원회 간사 및 상무위원장
1998∼1998. 국민회의 전라북도지부장 직무대행
1998∼1999. 국회 IMF환란원인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
1999∼현재. 전주 신흥고등학교 총동문회장
2000∼2001.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2000∼현재. 한국-대만 의원친선협회 회장
2001.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
2002. 새천년민주당 재정위원장
2002. 16대 대선 노무현 후보 선대위 국가비전21위원회 본부장
2003.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2004. 열린우리당 전북도당 위원장
2004∼2005.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2005∼2006.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장
2005∼2006.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2005∼2006. 열린우리당 의장
2006∼2007. 산업자원부 장관
2007∼2007. 열린우리당 의장
2008∼2010. 민주당 대표
2011∼현재.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2014~현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제 15,16,17,18,19대 국회의원

/서울=김일현기자 khe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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