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판본의 고장 전북 출판문화 부활 꿈꿔
완판본의 고장 전북 출판문화 부활 꿈꿔
  • 조석창
  • 승인 2015.02.0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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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조그마한 출판사 완판본 명성찾기 쉽잖아 인식개선등 산 많지만 출판박물관 만들고 싶어 순창 첩첩산중서 태어나 70리길 걸어 학교다녀 전주로 와서는 가장의 길 신아일보 기자-지사장하며 완판본-출판 중심지
▲ 완판본 부흥을 꿈꾸며 문학과 출판·인쇄를 사랑하는 신아미디어그룹 서정환 대표./김현표기자

 

완판본은 조선시대 전주에서 발간된 옛 책과 그 판본을 말한다.
조선시대 목판인쇄는 서울 경판본, 대구 달성판 등이 있는데 전주 완판본은 판본의 종류나 규모에서 최고라 알려져 있다.
완판본은 16세기 후반부터 우리나라 출판문화 보급에 큰 몫을 담당했다.
특히 상업적 판매를 목적으로 한 방각본 소설은 완판본의 꽃이라 불리며 보급망을 통해 전국에 유통됐다.
방각본은 대부분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한글소설로, 경판본이나 달성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시 발간한 방각본 소설은 23가지가 현존하고, 판본이 다른 종류까지 합치면 50여 종류에 이른다.
방각본 소설은 전라도 방언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임과 더불어 한글을 보급하는 일종의 교과서 역할을 했다.
일제 강점기 때는 한글말살정책에 맞서 한글을 지켜내는 데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완판본은 과거 전주가 대한민국 출판문화의 중심임을 알렸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수많던 목판들은 모두 사라졌고, 남아 있는 소설책에서 간신히 그 흔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사라진 완판본의 영예를 되살려보고자 하는 이가 있다.

평생 소원이란다.

완판본의 고장인 전주의 옛 명성을 되살려 출판문화의 중앙이 되자는 것이다.

신아미디어그룹 서정환(75) 대표 이야기다.

“완판본의 맥을 잇고 싶지만 아직은 만족스런 상태가 아니다.

몇 십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출판의 중심이 돼야 한다.”

그의 말처럼 지방의 조그마한 출판사가 완판본의 명성을 되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일부 작가들은 아직도 서울에서 출판을 해야 격이 올라가는 걸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많이 개선됐다지만 여전하다.

서울에 사무소를 2개 둔 이유다.

다행스럽게 요즘은 전주에도 부산이나 대구, 제주도 등에서 출판의뢰가 들어온다.

한국문인협회나 한국수필가협회도 이곳에 출판을 의뢰할 정도다.

조금씩 조금씩 꿈이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인식개선이 가장 힘들고 또 넘어야 할 산이다.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다.

그동안 고군분투했다.

아마 서울서 했다면 돈 좀 만져봤을 것이다.”

출판의 중앙이 되자는 그의 확고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의 소원은 출판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완판본의 고장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폐교를 구입해 만들 계획도 세웠지만 예산 문제로 잠시 멈췄다.

아직은 투자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행여 베스트셀러라도 나온다면 계획을 앞당길 수 있지만 요원한 상태다.

책을 읽지 않는 현 풍토에 베스트셀러는 남의 집 이야기다.

출판사 현장 유지도 신기할 정도란다.

마음이 답답해지는 이유다.

그는 순창 시골서 태어났다.

산길 30리, 신작로는 40리 길을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새벽밥 먹고 가는 셈이다.

가는 길 산림이 워낙 우거져 낮에도 컴컴할 정도였다.

공부도 제법 했다.

순창중과 순창농고에서 1, 2위는 도맡아 했다.

시골이지만 다행스럽게 먹고 사는 데 걱정은 없었다.

동네사람 권유로 전주로 이사를 왔는데 부친이 사기를 맞아 집을 날렸다.

덕분에 대학문턱을 밟아보지 못했다.

졸지에 청년가장이 된 그는 당시 신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비롯해 업무 등 다양한 일을 맡았다.

월급도 없던 시절, 신아일보 임시 지사장을 하면서 출판업을 시작했다.

현 신아미디어그룹 이름도 신문사 이름에서 명명됐다.

하루 종일 뛰어야 일감이 생기는 시절, 주위의 도움으로 하루 하루를 연명했다.

완판본을 처음 접한 게 이때였다.

먹고 사는 문제로 정신 없던 시절이지만 완판본 본 고장이 이곳이며, 과거 출판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알았다.

완판본이 단순히 책만 만든 것이 아니라 문맹을 깨우치는 역할도 했다는 것도 이 때 알았다.

 

 


신아출판사는 1970년 시작됐다.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소박한 시작이었다.

완판본의 맥을 잇는 게 경영이념이다.

45년이 지난 현재 단행본 3,500여권을 비롯해 정기간행물 10종을 펴내고 있다.

척박한 환경이지만 문예잡지 부흥만이 인문학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신념의 결과다.

출판업을 통한 재정적 어려움에도 그는 문예지 발간에 주력했다.

전국 유명한 필자의 작품을 이곳에서 배출하고 싶은 욕심에서다.

완판본 명성을 찾는 첫 걸음이란 믿음도 한 몫 했다.

대표적 문예지론 소년들을 위한 ‘소년문학’이다.

어린 시절 담임선생이 준 책을 집에 가서 밤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자신이 쓴 글을 친구들 앞에서 발표할 때부터 문학에 대한 소년의 꿈을 자라났다.

이렇게 책과 인연을 맺고 현재 길을 걷게 된 출발점이다.

요즘은 학원과 컴퓨터 때문에 읽지 않지만 여전히 발간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게 옳다는 생각에서다.

1990년 창간한 ‘소년문학’은 미래 꿈나무인 소년들에게 꿈을 주고자 하는 발행인의 순수한 목적 아래 25년을 버텨왔다.

‘소년문학’뿐 아니다.

인터넷, 스마트 폰 등의 발달로 책을 읽지 않는 시대가 됐다.

전자책이 발달되면서 종이책은 소멸 위기에 처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출판업계가 어렵고 문예지 출판은 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문예지 발간에 대한 소신은 굽히지 못한다.

어려울수록, 손해를 보더라도 더욱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자책의 비중이 확대될수록 종이책의 기반 역시 더욱 탄탄해질 것이란 믿음에서다.

‘전북수필’은 1980년대 비정기 간행물로 시작했다.

당시 작가들은 문예지에 작품 한 편 발표하려면 서울 가서 밥 사고 술 사고 해야 했다.

이들의 어려움을 돕고 발표의 장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1992년 만들어진 ‘수필과비평’은 전국 수필작가들의 등단무대다.

신아출판사가 자랑하는 대표 문예지다.

당시 문학 장르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수필 분야를 비평이라는 문학성과 접목해 수필계의 주목 받는 잡지로 일궈냈다.

이듬해인 1993년은 종합문예지인 계간 ‘문예연구’가 나왔다.

근대문학의 대표적 작가 연구와 작품 발굴 등 차별화된 편집으로 한국문화예술위 선정 4년 연속 우수잡지에 올랐다.

이처럼 다양한 문예지 발간은 발행인의 역사인식과 사명감의 결과물이며, 상업성에 의존하다 몇 년 버티지 못하는 국내 현실에 비해 모범적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상도 만들었다.

관련 분야 종사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무대다.

신곡문학상을 비롯해 수필과비평문학상, 황의순문학상 등이 있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이들을 격려하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발판마련이 목적이다.

여기서 상을 받고 등단한 작가들은 신아출판사가 곧 친정이며, 전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

황의순문학상은 논하기 위해선 자연스럽게 부인 이야기가 나온다.

이 문학상은 부인 이름을 따 제정됐다.

그만큼 서정환 대표에게 있어서 부인의 역할은 매우 컸다.

‘오늘이 있기까지 집사람 도움이 컸다’고 할 정도다.

 

 

 


과거 가장으로써 동생들까지 떠맡아야 할 상황에서 처가의 결혼 반대는 당연지사였다.

집 한 채 없고 버젓한 직장도 없었다.

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부인은 보따리를 싸고 와 결혼을 하게 됐다.

결혼 후 모든 일은 부인이 도맡아 했다.

출판 업무는 고스란히 부인의 몫이었다.

여자들이 자전거를 타면 바라보는 시기, 부인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고무신 신은 채로 책을 배달했다.

아내이면서 사업동반자, 인생의 동반자였던 셈이다.

부인은 2004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떠난 부인을 잊지 못해 그는 추모집과 수필집 두 권을 발간했다.

부인 이름을 딴 황의순 문학상은 2006년 만들어졌다.

다른 상과 달리 특별한 정이 가는 상이다.

때문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들 중심으로 시상을 한다.

세상을 떠난 부인을 문학상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그는 발행인, 인쇄인이면서 수필가다.

1994년 문예연구에 등단해 정식 작가가 됐다.

등단한 이유가 무척 재미있다.

출판을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 손이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교정을 볼 때마다 은근히 무시하는 작가들의 시선을 느낀 참에 글을 써보자고 결심하게 됐다.

또 전북수필이나 언론에 글을 게재하면서 자신의 능력도 알리고 싶었다.

그가 말하는 좋은 수필이란 사유와 생각이 들어간 글이어야 한다.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고 기록한다면 그것은 수필이 아니라 게 그의 지론이다.

문학적 풀이, 작가만의 독특한 시각 등이 수필이며 곧 문학이란 것이다.

슬하엔 1남 2녀를 뒀다.

향후 부친의 가업을 이끌어갈 재목들이다.

큰 아들은 27살 어린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신아출판사를 계승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막내 역시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부친을 돕고 있다.

올해는 전주에서 전국 수필인들의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한국수필가협회 주관으로 수필의 날 전국행사가 4~5월경 펼쳐질 예정이다.

약 500여명의 전국 수필가들이 전주땅을 밟는다.

서 대표는 이 행사를 통해 전주를 알리는 데 만반의 준비에 한창이다.

이들이 보고 들은 전주의 풍경이 이들의 글을 통해 전국에 알리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 곁엔 신아가 있다.’

사무실 한 켠에 걸려 있는 글이다.

평생 책과 함께 살아왔다.

책을 통해 인생을 논하고 책과 함께 인생을 보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문학적 사고가 바탕이 된 정신문화를 제쳐둘 수 없기 때문이다.

45년의 세월을 통해 신아는 문학의 결실을 담아내는 그릇 역할인 출판문화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평을 받고 있다.

또 과거 융성했던 우리 고장 출판문화를 되살리려는 큰 걸음도 내딛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는 아직도 꿈을 먹고 산다.

완판본이 다시 이 지역에서 되살아나길 바라면서다.

비록 그 꿈이 완성되지 못한다 해도 문제될 게 없다.

그의 몸과 마음속엔 이미 완판본이 완성돼 있기 때문이다.

“전주에만 있는 완판본은 자랑스러운 문화재다.

과거의 명성을 되살리고 현대에 그 맥을 이어가기 위해선 전주가 출판의 중앙이 돼야 한다.

그 중심에 우리가 있다.”

이런 서정환 대표를 유한근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서정환 작가는 가족과 전주를 사랑하는 것처럼 문학을 사랑한다.

출판·인쇄를 사랑한다.

이에 대해 공청회를 열어도 종합결론은 그렇게 나올 것이다.

그가 출판 인쇄인이고 작가인 것처럼, 그가 완판본인 것처럼 이 진실은 자명하다’

기업 이익 대부분을 어려운 문학단체나 문화예술인에게 재투자해 문화의 등불을 만들고 있는 서정환 대표.문예지를 통해 완판본의 부흥을 꿈꾸고 있는 사람.세상이 그를 주목하고 그가 세상으로부터 주목 받는 이유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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