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미-양소영 청년몰 아이콘 전주남부시장 야시장 매니저 청년장사꾼 프로젝트 합류 2년간 홍보 매진 3년차 완료 전주거주 10년 프로젝트 계획

‘구미’의 본명은 이승미이고, ‘양소’의 본명은 양소영이다.

구미와 양소로 불리기를 좋아해, 주위에 본명보다 별명이 익숙한 사람이 더 많다.

구미는 부산에서 나고 자란 올해 서른의 처자이고, 양소는 서울서 나고 자란 역시 올해 서른의 처자다.

전주에는 그 흔한 친척 한 명 살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 둘이 지금, 전주의 가장 핫한 플레이스로 이름을 얻고 있는 남부시장 청년몰의 아이콘이자, 불금과 주말저녁이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남부시장 야시장의 매니저로 맹활약하고 있다.

‘쌀’발음 조차 아직 제대로 교정하지 못한 부산처자와 깍쟁이 스타일의 서울처자는 어쩌다가 전주에 와서 전통시장의 터줏대감이 된 것인가. 구미와 양소를 알고 지낸 지 횟수로 5년. 그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궁금증이 갑자기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둘은 대학 때부터 친구다.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를 다녔다.

둘 모두 학교생활이 썩 그렇게 재미있진 않아 대학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 활동들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때 구미의 주된 관심은 협동조합 등 공동체 관련의 일들이었고, 양소의 관심은 NGO 등 시민운동에 있었다.

우석훈 박사가 쓴 『88만원 세대』를 필두로 청년 유니온 같은 담론들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사회문제 해결과 일자리 창출의 대안으로 사회적 기업이 각광받던 때였다.

   먼저 전주에 터를 잡은 것은 양소였다.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 벤처 등을 지원하는 서울의 함께 일하는 재단에서 일하다가, 전주에 있는 한 사회적 기업을 알게 되었다.

각종 지원관련 서류작업보다 현장에서 직접 일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간단하게 짐을 챙겨 내려왔다.

2010년 12월의 일이었다.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전주로 내려간 친구가 궁금하기도 하고, 또 전주한옥마을이 가보고 싶기도 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성지순례 하듯 양소를 찾아 전주에 다녀가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한 명이 구미였다.

2011년 초봄 전주를 찾은 구미는 양소가 일하던 사회적기업에서 남부시장 청년장사꾼 프로젝트를 이제 막 시작하게 되었다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청년 조직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관심이 많던 구미는, 전통시장에 청년장사꾼의 공간을 조성한다는 프로젝트에 귀가 솔깃했다.

뭔가 될 것 같았고,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주에 다녀간 후, 딱 일주일 만에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다시 전주에 내려왔다.

재미있었다고 한다.

첫해에는 청년들을 끌어 모아 야시장을 열거나 포럼을 진행하면서 프로젝트를 홍보하는데 집중했다.

2년차인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얼개가 짜지기 시작했다.

비어있던 남부시장 2층에 십여 개의 청년 점포가 들어섰고, ‘청년몰’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도 지어주었다.

현재는 2층에 청년들이 운영하는 서른 세 개 점포가 꽉 들어차있고, 청년몰은 전주에 가면 꼭 들러봐야 하는 곳이 되었다.

언제나 문전성시다.

3년차까지 계획되어 있던 남부시장 프로젝트는 종료되었다.

그간 구미와 양소 중심으로 기획되고 운영되던 청년몰 또한 이제는 청년상인들이 협의체를 만들어 내부규약을 만들고 자체 기획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신 구미와 양소는 남부시장에서 지난해부터 진행되고 있는 야시장의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청년몰이 기반이 되어 진행되는 사업으로, 여기서도 구미와 양소는 청년몰과 야시장을 잇는 다리역할을 하며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하고 있다.

전주에 내려온 지 이제 만 4년이 되었다.

온전히 ‘일’이 아니면 기댈 곳이 별로 없는 객지생활이라 지칠 법도 하다.

그 사이 ‘뭔가 신기하면서도 친근했던’ 전주는 이들에게 일상의 생활을 영위하는 별 특별할 것 없는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 구미와 양소는 4년 전 그랬던 것처럼, 전주에 새롭고 재미있는 일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에 차있다.

늘 일이 붙잡았고, 힘든 객지생활을 이겨내는 원동력이었다.

내친김에 전주 거주 10년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자체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전주 거주 10년 프로젝트가 만약에 성공한다면, 스물 여섯 처자들은 마흔의 전주사람보다 더 전주스러운 아줌마가 되어있겠지? 10년 후에도 이들을 전주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최정학 전북상설공연추진단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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