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천석꾼 집안에서 태어나 큰키에 운동잘해 '대장' 불려 친구에게 답 보여주다 걸려 서울 중동고 진학하게 돼 그런 약속을 왜 했는지 기억 없지만 책임감 때문인듯 그 이후 약속 무조건 지키고 함부로 약속 안해

▲ 국민 통합과 남북 통일을 숙명으로 여긴다는 한광옥 국민대통합 위원장./김현표기자

한광옥 국민대통합 위원장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별로 큰 게 아니었다.
어쩌면 소소한 일일 수도 있는데, 10여년 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가졌던 의문이었다.
이번에 물어봤다.
그리고 그 답을 들었고, 그 일이 한광옥의 인생에 중대 변곡점이 됐음을 알 수 있었다.
“후회하느냐”고 물어봤다.
그러나 “좋지 않은 일이었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지켜야만 했다”고 그는 답했다.
한광옥의 무게감이 크게 느껴졌다.
전북 출신으로 대통령 비서실장, 당 대표, 4선 국회의원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한광옥.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희망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6일, 서울 세종로에 있는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진행됐다.
/편집자주

 

한광옥은 전주에서 천석꾼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아무런 걱정 없이 마냥 즐거운 어린 시절이었다.

당시 또래들보다 키가 한 뼘은 더 컸고, 운동도 잘 해서 그는 어릴 때부터 리더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대장으로 불렸다.

공부도 잘 했고 그래서 전주북중에 들어갔다.

당시 북중에서는 대부분 전주고로 올라갔다.

한광옥도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됐다.

그런데 그는 서울의 중동고를 다녔다.

왜 그는 중동고를 다녔을까, 10여년 전부터 궁금했던 일이었다.

이 참에 물어봤다.

한광옥은 당시를 회상하는 듯 잠시 눈을 감았다.

“김 기자. 그런데, 그 친구 이름은 쓰면 안 돼.”

 

 

[약속(約束)-한광옥의 일생을 관통하다]

고교 입시 얼마 전, 그는 전주북중 3학년 생이었다.

당시 한 친구의 얼굴이 어두웠다.

이유를 물었다.

그 친구는 “나는 중학교 입학할 때도 보결로 입학했는데, 고등학교도 그래야 될 것 같다.

어머니를 볼 면목이 없다.”

아마 그 친구는 공부가 조금 떨어졌었나 보다.

한광옥은 그를 위로했다.

“걱정 말거라. 혹시 네가 재수가 좋으면 시험장에서 내 뒤에 앉을 지도 모르니, 가능하면 내 답안지를 꼭 보여주마.” 당시에는 립 서비스였다고 한광옥은 말했다.

그러나 그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시험장에서 그 친구는 한광옥의 뒷 자리에 앉았다.

시험이 시작되자 친구는 답안지를 보여달라고 했고 한광옥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다.

하지만 둘째 시간에 감독 선생님이 경고를 줬다.

들켜 버렸다.

선생님은 “한번만 더 그러면 즉시 퇴장이야, 알겠어?”셋째 시간, 한광옥은 저 친구를 봐주다가는 내가 퇴장 당하겠다.

답안지 보여주는 일은 깨끗이 잊어버리자..라고 마음을 먹었지만 또 다시 친구가 부탁해 왔다.

한광옥은 “부정행위 그 자체는 옳지 않으나 말에 대한 약속은 지켜야 되지 않겠느냐”는 쪽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답안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또 들켰고 한광옥과 친구는 시험장에서 퇴장 당했다.

둘은 시험장에서 나와 중국집으로 갔고 거기에서 작별했다.

한광옥은 당시 2차 학교로, 그 친구에게는 전주 S고를 권했고 본인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2차 중에서 가장 명문이었던 중동고를 선택했고 무난히 합격했다.

“김 기자, 그래도 내가 서울대 영문과 들어간 거 보면, 공부는 좀 했던 것 같지?” 호탕한 너털웃음이다.

“그런 약속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셨나요?”“글쎄,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런 쪽으로 마음을 굳혔는지는 정확한 기억이 없어.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그를 꼭 도와줘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걸 느끼고 있었어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내가 그 친구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자체가 좀 우습기도 해요”.(웃음)한광옥은 그리고 “중동고를 다녔기에 지금은 고교 동창회가 두 개가 됐어요. 전주북중-전주고, 그리고 중동고 두 곳이 됐지요”라고 말한다.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보는 그의 품성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그 이후로 나는 약속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때문에 함부로 약속을 하지 않게 됐어요. 대신 약속한 것은 반드시 목을 걸고 지킵니다.

제 정치 역정을 보면 알 겁니다.”

 

[역지사지-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치]

한광옥 위원장의 사무실은 그리 크지도, 좁지도 않은 적당한 규모다.

창 밖으로 내다보면 청와대와 세종문화회관 그리고 광화문 대로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한 위원장은 이 자리에 앉아서, 아니면 창가에 서서 어떻게 국민대통합을 이뤄낼 것인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 고민은 이어지고 있다.

-요즘 바쁘시죠? 대통합위원회는 이름 그대로 계층간 갈등, 정치이념간 갈등 그리고 지역 갈등까지 담당해야 할 분야가 워낙 많은데요, 위원회가 출범한 지도 벌써 3년 차가 되네요.

“3년 차 들어가네요. 국민대통합이라고 하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용어지요. 눈으로 보이지는 않아요. 저희 위원회가 한 것을 몇 가지 든다면 먼저 국민대통합에 대한 종합계획을 세웠습니다.

중앙부처와 지자체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와 협력해 국민대통합 종합계획을 수립했고 또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전개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작은 실천, 큰 보람 운동 같은 것이지요.국민 제안과 전문가 의견 등을 수렴해 실생활에 필요한 일들도 하고 있어요. 운전면허증에서 지역 표기를 없애는 것이나 소액 실손보험금 청구를 간소화하는 것, 이런 것들도 저희가 개선시킨 것들입니다.

또 주요 도시에서 30여 차례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전국 각계각층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어요.우리 사회는 무엇보다 갈등 해소가 중요합니다.

갈등 같은 것도 우리 역사를 보면, 지난 몇 십 년 사이에 압축 성장을 한 것 아닙니까? 하지만 압축성장을 하면서 압축갈등도 쌓였어요. 이러한 것을 한 번에 해결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우리 나름대로 한 단계, 한 단계 더 노력해 나가고 있는 거지요.” -지역감정 해소도 위원회의 주요 과제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 위원회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국민화합을 이루고, 나아가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때에 ‘지역감정’이라는 괴물이 물귀신처럼 우리 발목을 잡고 있어요. 고향을 위하는 애향심과 지역감정은 전혀 다릅니다.

분열적 지역감정은 국민화합에 전혀 도움되지 않아요.지역감정이라는 형체 없는 괴물은 건전한 상식과 이성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발을 붙일 수 없어요. 그것은 마치 곰팡이 균과 같아서 밝은 햇볕이 들어오면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국민 모두가 건전한 상식과 이성으로 무장돼 있다면 지역감정이라는 곰팡이 균은 더 이상 맥을 못 출 겁니다.”

 

-위원장님은 긍정적, 적극적 사고로도 유명하신데요.

“성공과 실패는 적극적, 긍정적 사고가 개입하느냐 개입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어요. 어떤 일을 하든, 매사에 긍정적인 태도로 임하게 되면 이미 반은 성공합니다.

긍정적 사고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적극적이고 긍정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부정적인 사고와 비관적인 태도에서 문제가 비롯됩니다.

실제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는 역사와 사회, 인생에서 기적을 일으키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어요.”

 

-오늘 인터뷰 중에 역지사지(易地思之), 해불양수(海不讓水)를 자주 말씀하시네요.

“저는 역지사지라는 말을 아주 좋아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기를 좋아한다는 뜻이지요.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역지사지하는 지혜야말로 지역감정을 극복하고 나아가 민족 분단을 극복하는 바른 길입니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지요.해불양수. 바다는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 거대한 대양을 이룬다는 말이지요.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인물됨이 큰 그릇을 비유해 해불양수라고 합니다.

저 또한 어떠한 사람도 거부하지 않는 도량을 갖추고 싶어요. 사람을 설득시키는 힘은 권력도, 돈도 아닙니다.

그 사람의 사람됨과 올바른 정치노선 같은 무형적인 요소가 사람을 포용하는 것이지요.”

 

 

[비젼(Vision)- 통합과 통일의 기반 다지고 싶다]

“대통령 비서실장부터 당 대표 그리고 4선 국회의원, 민화협 대표, 노사정위원회 위원장까지 정말 많은 일을 해 봤어요. 그러니 앞으로 더 뭘 하겠다는 큰 욕심은 없어요. 그러나 내 생애 마지막 목표는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국민통합과 남북통일에 기여하는 것이에요. 특히 남북통일이 돼야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우뚝 서고, 최고의 경제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단호하다.

국민통합과 남북통일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충 하는 말이 아닌 것 같다.

의지와 목표가 뚜렷하다.

특히 앞으로는 남북통일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 한광옥 위원장의 통일에 대한 진정성이 드러난 일화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까지 지냈던 그도, 한 때 DJ와 소원하던 때가 있었다.

1998년 지방선거였다.

노사정위원회를 성공적으로 이끈 한광옥을 김 대통령이 불렀다.

“이번에 서울시장에 나가는 게 좋겠소!” DJ의 단호한 말에 한광옥은 알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얼마 뒤. 김 대통령은 한광옥에게 여론조사 내용을 들어, 불출마로 입장을 바꿨다.

한광옥은 정보기관이 여론조사를 빙자해 대통령과 자신 사이에 갈등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 통탄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처음에 제안한 분은 내가 아니라 대통령이었어요. 그런 대통령과 나 사이에 갈등이 있게 하고, 정보기관이 국내 정치까지 관여하는 게 화가 날 수밖에 없었지요.” 당시 당에서는 고건을 영입하고 있었다.

결국 선거에서 고건 시장이 선출됐다.

김 대통령은 한광옥에게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위로했지만 한광옥은 적잖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 같다.

DJ 정부를 출범시킨 한광옥은 그 때 김 대통령과 소원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DJ의 어떤 제안도 맡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돌린 것은 바로 통일이었다.

국정원장 임동원은 얼마 뒤 한광옥을 찾아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북한에는 민화협이 있는데 우리 남측에서도 그를 상대할 통일운동 단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한테는 민간 통일운동 단체가 무려 183개나 있어요. 이래서는 북측 통일운동단체인 민화협을 상대하기 쉽지 않아요. 남쪽에 있는 통일운동 단체 183개를 하나로 연합해 주세요. 대통령의 뜻입니다.”

‘통일’이라는 단어에 한광옥의 마음이 움직였다.

“서울시장 문제로 대통령에게 마음이 상해 있었어요. 그래서 대통령의 어떤 제안도 고사할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솔깃했어요. 왠지 알아요? 평소에 나는 통일문제에 관심이 무척 많았어요. 정치인이라면 반드시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대통령과 소원한 관계까지 갔던 한광옥은 ‘통일’ 그 하나로 다시 DJ 정부의 전면에 나선다.

그리고 남한에서 통일 운동을 하는 모든 단체를 만났고 ‘민화협’을 구성하게 된다.

여기에는 보수, 진보를 망라한 남한의 민간 통일운동 단체들이 들어왔다.

1998년 9월, 민화협 즉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공식으로 출범했다.

“지금도 통일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어요. 통일은 우리의 숙명 아닙니까? 우리의 역사를 위해서도 통일은 반드시 이뤄야 할 사명입니다.

특히 정치인은 역사와 민족을 위해 통일을 실현해야 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통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생각입니다.”

국민 통합과 남북 통일. 한광옥의 영원한 숙제이자 그의 숙명이다.

 



한광옥(73)

-전주
-전주북중, 중동고, 서울대 영문학과(중퇴)
-민주화추진협의회 대변인
-평화민주당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국회 노동위원장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제1기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초대 대표상임의장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새누리당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장
-제1,2기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
-11·13·14·15대 국회의원(4선).

/서울=김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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