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삼 가문 3대째 이어받아 운장산 폭우피해 수삼가공 홍삼 엑기스 주문 쇄도··· 홍삼제조기-증삼 발명특허 영양소 지켜 '전국구' 명성 사포닌 그대로 증삼 얻어

▲ 어려움이 있더라도 눈속임을 해서는 안된다며, 경영자보다 홍삼을 잘 만드는 기술자로 남고 싶다는 송화수 명인./김현표기자

뭐가 그리 다른가 뭐가 그리 다른가. 멍하니 바라보게만 한다.
그저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진안 마이산의 기운과 자태는 보는 이를 그저 탄복하게 한다.
공기 청량하고 물이 맑은, 그 기운 센 땅에서 품어져 나오는 약초 향내가 시야에 가득한 느낌이다.
300m 이상의 산간고랭지와 큰 일교차는 사포닌 풍부한 인삼을 재배하기 최적지라 한다.
때문에 진안은 전국 최초 인삼 시배지이자, 고려인삼의 원조로까지 일컬어진다.
나무랄 데 하나 없는 완벽한 자연의 힘이었을까?50년을 진안에서 오롯이 홍삼에 매달려,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전국 유일 홍삼 명인으로 선정된 송화수 명인(83)을 만나 그간의 회한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 홍삼은 송씨 집안의 운명

“남들 보기엔, 그럴싸한 영농조합법인 대표지만, 경영자보다 홍삼을 잘 만드는 기술자로 남고 싶습니다.”

올해로 여든셋. 송화수 명인이 고집스레 외길만 걸어왔던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발언이다.

50여 년 전 공무원을 그만두고, 아버님과 함께 홍삼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처럼 오랜 세월 홍삼에 빠져 살 줄 몰랐다고 한다.

손자들에게 먹이겠다며 인삼을 몰래 재배해 홍삼으로 만들었다던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송화수 명인까지, 홍삼 3대가 됐다.

그 뒤를 이어 딸 송유정씨가 홍삼 가문의 4대를 개척하고 있다.

“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합법적이지 못했던 인삼재배를 할아버지가 집안에 약재로 쓰기 위해 조그만 밭에서 일구셨죠. 해방 전인 1940년대였는데, 홍삼이라는 개념보다는 몸이 약한 저를 위해 삼을 찌고 말려 보관 한 후 끓여 먹이시곤 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할아버지가 인삼재배와 가공을 시작했고, 이후 송 명장이 3대째 홍삼에 매달리고 있다.

 

 

▲기록적인 폭우가 홍삼 기반이 됐다

송 명장은 2008년 홍삼 가공업을 시작하려 했지만 수중에 가진 돈이 많지 않았다.

삼을 구입할 돈도 없어 공장을 돌리지 못했던 그 때, 운장산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인삼밭이 모두 물에 잠기거나 쓸려 나가는 피해가 잇따르자 농협과 군청에서 농민들을 위해 수삼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송 명장 가공공장으로 쓸려온 삼을 가져와 홍삼 엑기스(진액)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반을 잡게 된 송 명장은 정직한 홍삼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홍삼을 만들기 위해 수삼을 찌는 과정에서 수증기가 밖으로 새는 것을 보며, 새로운 설비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 증삼 특허로 획기적인 전환점 맞다

“홍삼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영양소가 수증기를 통해 다 빠져나가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이를 잡아야만 진정한 홍삼 한 뿌리를 다 먹을 수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라는 생각에 불면의 나날을 보낼 정도였죠. 그러다가 어떻게든 직접 만들어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송 명장이 ‘전국구’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지난 2010년 4월 전국 최초로 홍삼제조기와 증삼방법에 관한 발명특허를 등록하면서부터다.

증삼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은 증기에서 열로 증삼 방법을 바꾸는 방식이다.

“수삼을 홍삼으로 제조할 때 고유 성분이 유실되지 않게 하는 방법에 골몰했죠. 증삼할 때 스팀으로 쪄내다 보면 휘발성이 강한 사포닌이 증기와 함께 날아가고, 물로 변한 습기에 의해 사포닌이 씻기게 되죠. 결국 인삼을 쪄낼 때 스팀을 외부로 배출하는 단계에서 스팀 배출관을 막고 증삼기 벽체에 설치된 열매체 순환관을 통해 열을 순환시켜 내부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것이죠.”

이때 증삼기 내벽 상부에 설치된 물 공급관을 틍해 물이 증삼기 내벽에 따라 흘러내리고 증삼기 온도가 낮아져 인삼이 숙성된다.

이런 단계를 거치면 마침내 인삼 고유의 성분인 사포닌 등 유효 성분이 유실되지 않은 온전한 증삼을 얻게된다.

인삼에 관한 그의 연구는 오랜 세월 계속됐다.

홍삼 증삼방법 개선 이전엔 순환농법으로 인삼 재배에 농약 사용을 현격하게 줄였다.

버려지는 인삼대에서 약용 성분을 축출해, 그것을 다시 자라는 인삼에 투입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뿌리의 생육이 좋아지고 인삼의 품질도 개선된다는 것 이런 연구개발은 1996년 인삼의 전매제가 해제된 후 가속도가 붙었다.

1996년 3월 삼신인삼가공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한 후 2년 만인 1998년 12월 홍콩·대만·미국·호주·동남아 등에 수출하는 개가를 이뤘다.

그는 1999년 당시 한국인삼공사와 한국인삼연초연구소에 수삼증숙기를 이용한 증삼 시스템 운용 방법을 전파하기도 했다.
 

 

 

▲홍삼도 인재양성이 문제다

인삼 재배서부터 국내 최고의 홍삼 가공기술까지 경지에 올라 있는 송 대표의 걱정은 인재양성이다.

“전북이 농도라고는 하지만 이제, 영남에 비해서도 기술이나 규모화가 뒤지는 측면이 많이 있어요. 인삼분야에 있어서도 전문가의 맥이 끊어질 수 있으니,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김치는 일본이, 인삼은 중국이 홍삼은 러시아가 제각각 자기네 것이라고 떠드는 것을 보고 있자면, 이러다 정말 홍삼 주종국을 다른 나라로 빼앗길 것 같다며 송 명장은 울분을 토했다.

“우리나라는 홍삼에 대한 표준화 된 레시피와 인재양성의 학과개설이 전무합니다.

재배, 가공, 효능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론적 뒷받침을 해줄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도록 행정에서 도와주는 게 급선무입니다.”

실제 진안 홍삼연구소나 유수의 대학 연구소 등이 인삼 실체에 대한 이해가 크게 부족하고 제품 표준화에 나선 대학 연구소는 증삼시설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형편이라는 것. 이에 송 명장은 한국홍삼이 처한 상황이 녹록하지 않은 만큼, 지금부터라도 홍삼의 맥을 이어가기 위한 전략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송 명장의 경영철학 

백발의 노신사였지만, 눈빛은 청년처럼 형형했다.

송 명장은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그만큼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그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쉬운 것부터 풀어나가야 자식들에게 후배들에게 홍삼의 미래가 열린다고 믿고 있었다.

온갖 어려움이 있더라도 저가제품으로 눈속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 동안의 삶이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게, 그의 다부진 얼굴에서 확연하게 배어 있었다.

 

 


/박정미기자 jun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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