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흔하고 흔한 탱자나무 울타리는 이제 보기 드문 광경이 됐다.
시골마을에도 가시가 없는 나무와 모양이 좋은 나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 시골마을엔 탱자나무가 천지였지만 이제는 한 편의 추억이 됐다.
놀이문화가 없던 시절, 탱자를 마구 던지고 놀던 시절은 예전 이야기다.
중인리 모악산 올라가는 외진 마을로 가보니 아직도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하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때가 일러 탱자가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았지만 곧 하얀 꽃이 피고 가을엔 노란 탱자가 주렁주렁 열리는 모습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노랗게 익은 탱자열매는 생각만 해도 그 향이 코 끝을 감도는 것 같다.
가시가 많은 탓에 탱자는 울타리 뿐 아니라 죄인을 가둬두는 역할도 했다.
조선시대 행해졌던 위리안치(圍籬安置)는 죄인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뒀다.
전라도엔 가시나무 대신 탱자나무가 많아 이 형을 받은 사람은 대부분 전라도 연해 섬으로 보내졌다.
탱자는 번식이 강한 식물이다.
탱자 안에 들어있는 콩알만한 씨앗이 모두 싹으로 나온다.
하나하나 떼어 울타리 빈 곳에 심으면 이듬해 울타리 역할을 해 준다.
예쁜 꽃도 보여주고 열매도 제공하고 또 낯선 이들의 접근을 막아주니 이보다 감사한 데가 어디 있으랴! 탱자의 고마움을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귤, 유자과에 속하는 탱자는 피부질환과 기관지질환에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타민 C가 풍부해 가래를 삭이는데 도움이 되고, 몸 속 나트륨 배출을 도와주며 혈류 흐름을 좋게 해 준다.
또 신장의 기능을 증진시켜 부종을 예방하고 가려움과 두드러기에 효과가 커 아토피가 심한 사람은 탱자 끓인 물로 목욕을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추억의 꽃말을 가진 탱자는 관련 전설도 있다.
먹고 살기 힘든 한 과부가 자신의 딸을 인근 부잣집 노인의 쌀과 바꾸게 된다.
딸은 첫날밤을 치른 후 목을 매 자살을 했고, 화가 난 노인은 묻지도 않고 언덕 너머에 버렸는데, 누군가 이 딸을 평지에 묻어주게 된다.
이듬해 봄 딸이 묻힌 자리에는 가시가 가득한 나무가 자랐는데 바로 탱자나무였다.
가득한 가시는 누가 자신을 범하지 못하게 방어하는 것이라 여겨져 사람들은 전국에 옮겨 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조석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