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금산사 방면으로 가다보면 이정표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서늘할 귀신사다.

귀신과 관련된 것으로 오해할 법 하나 사실상 전혀 연관이 없다.

귀신사는 돌아올 귀(歸)와 믿은 신(信) 즉 믿음이 돌아오는 사찰로 풀이된다.

귀신사는 신라 676년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다.

원래 이름은 국신사였는데,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되었다가 1873년 다시 만들어지면서 이름도 현재와 같이 변경됐다.

지금은 조그마한 사찰이지만 증건됐던 고려시대에는 대단히 큰 규모의 대찰로 전해진다.

사찰은 돌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경내가 나온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적광전으로 1985년 보물 제826호로 지정됐다.

17세기 조선시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적광전은 정면5칸, 측면3칸의 목조건물이다.

내부엔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진흙을 붙여가면서 만든 소조불상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 많은 목조불상들이 훼손된 나머지 불에 강한 흙으로 불상을 만들어 사전에 훼손을 방지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대적광전 뒤 언덕계단을 오르면 전북유형문화재 제62호인 삼층석탑과 제64호인 석수를 만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석수인데, 웅크리고 있는 사자상 위에 남근석이 놓여 있다.

사찰에 남근석이 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로, 원래 이곳이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은 지형이라 그 기운을 누르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또 내원사찰이 없던 백제 시대, 귀신사에 남근석을 두고 왕실의 후손을 기원했다는 이야기도 내려온다.

내용이야 어떻든 사찰 내 불교와 민간신앙이 결합된 조각상이 존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귀신사가 사람들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소설가 양귀자씨가 소설 ‘숨은 꽃’의 배경을 삼게 되면서부터다.

양귀자씨는 소설 속에서 귀신사를 자주 언급했다.

그는 귀신사를 ‘신이 돌아오는 자리’라 표현했다.

 

-지난 가을에 귀신사는 우선 이름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영원을 돌아다니다 지친 신이 쉬러 돌아오는 자리. 이름에 비하면 너무 보잘 것 없는 절이지만 조용하고 아늑해서 친구는 아들을 데리고 종종 그 절을 찾는다고 했다-  

 

귀신사는 특이한 것이 또 있다.

남근석이 남성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여성을 상징하는 물건을 만날 수 있다.

대적광전 앞 마당 한 구석에 있는 돌로, 당초 용도는 목욕물을 받는 돌 욕조로 알려져 있지만 쪼개져 있다.

그 형태가 마치 여성을 상징하는 형태로 돼 있어 남성과 여성의 상징물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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