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명인 문옥례씨를 만나다

▲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36호로 선정된 문옥례 명인은 6대째 내려온 고추장 담금법을 이어받아 50여년 고추장과 동고동락을 함께 해 오고 있다.

고추장을 상징하는 수 백개 장독이 낯선 방문자를 맞는다[편집자주]고추장을 상징하는 수 백개 장독이 낯선 방문자를 맞는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곳이 고추장의 명가 순창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기다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곳, 충분한 숙성을 통해 완성체를 만드는 것이 비단 고추장 뿐일까. 진정한 장맛을 위해선 숙성의 기다림이란 자연의 섭리와 이치를 깨닫는 것은 어찌 보면 인생의 한 단면과 일맥상통한다.
공기 좋고 물 맑은 순창에서 고추장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문옥례 명인이다.
지난 2010년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36호로 선정된 명인은 6대째 이곳에서 고추장과 함께하고 있다.색깔도 향기도 없는 간편한 디지털 음식이 보편화된 시기, 전통방식으로 전통발효음식을 만드는 명인은 순창고추장을 만들고 지키는 산 증인이다.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에 사용한 ‘문옥례 고추장’은 일종의 제품실명제다.
소비자에게 전문성과 장인정신을, 생산자에겐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모두에게 유익한 윈윈 게임인 것이다.
고추장의 매운 맛을 국내 뿐 아니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는 문옥례 명인의 고추장 인생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물건 파는 게 끝이 아녀. 입에 들어갈 때까지 책임을 져야지. 내 이름을 걸고 파는 건데 당연한 것 아닌가.” 순창 토박이로, 조씨 종손가에서 매운 시집살이로 고추장 명인에 우뚝 선 문옥례(85) 명인. 그는 6대째 내려오는 순창 고추장의 담금법을 이어받아 오십 년 넘게 순창전통고추장을 담가오고 있다.

순창지역의 고추장이 전국적 유명세를 탄 것은 지난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전부터 서너 집에서 전통고추장 명맥을 잇고 있었지만 전국적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다시 옛 명성을 되찾은 제5공화국 때 치러진 국풍81이란 행사에 순창 지역특산물 향토음식으로 출품되면서부터다.

이후 순창고추장의 명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문옥례 명인의 손길이 바빠지게 됐다.

현재 순창에 고추장 골목이 생긴 것도 이때쯤이다.

이후 유명세를 탄 명인은 1984년 고추장과 장아찌 상품특허를 내고, 1988년엔 서울 유명 백화점에 고추장 코너를 내면서 전국구 유명 인사로 떠올랐다.

조그만 지역의 향토음식이 전국에서 판매되는 유명상품이 될 줄은 명인도 예상치 못한 결과다.

하지만 음식에 대해 지극한 정성과 전통기법을 활용한 제조방법을 사람들 입맛을 끌기엔 충분했다.

심지어는 고추장을 직접 먹어보고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고추장을 회수하기도 했다.

자신의 입을 충족시키지 못한 음식이 다른 사람의 만족을 얻어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렇듯 초심을 잃지 않은 정성과 변함없는 맛 덕분에 최초 집안 살림으로 시작했던 것이 이제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사업체로 변모했다.

또한 전통고추장의 전통적 방식을 위해 옛날 아궁이와 가마솥을 직접 만들어 고추장 제조방법을 소개하고 있으며, 관련 문헌을 이용해 전통 고추장 제조기법 재현에도 노력하고 있다.

고추장의 전통기법이 온전히 전달되고 보존돼야만 전통고추장이 명맥을 이어갈 수 있고 그것이 바로 후손들을 위한 자신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곳 고추장은 순창의 순수한 공기, 신선한 물을 기반으로 한다.

여기에 간장이나 찹쌀, 고춧가루 등이 잘 조화가 되면 깊고 쌉쌀한 맛이 우러나는 순창만의 고추장이 된다.”

좋은 재료가 좋은 제품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명인의 고추장 담그기는 고추가 얼굴색을 빨갛게 익을 때 시작된다.

먹어봐서 매콤하고 달콤한 맛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쪄서 말린 고추는 금물이다.

햇볕에 자연 건조된 태양초만 사용된다.

고추장의 기본 재료가 고추인 만큼 좋은 고추를 사용해야 좋은 고추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건조과정이 끝난 태양초는 손질을 거친 후 빻는다.

빻는 과정에서 불순물을 걸러내면 고추장 만들기의 기나긴 여정이 비로소 시작된다.

좋은 재료에서 시작된 고추장의 마무리는 숙성의 기다림이다.

갓 완성된 고추장은 다소 짜고 맵다.

완성품의 감칠맛은 숙성과정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항아리에 잘 담아 햇볕을 쬐고 조선간장을 부은 다음 비닐을 덮어 고무줄로 동여맨다.

비닐 위에 왕소금을 뿌리고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다시 비닐로 덮어 15도 이하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보관 기간은 약 6개월이다.

가끔 뚜껑을 열어 휘저어주면 짜고 맵던 처음 맛이 알싸하고 깊은 맛의 고추장으로 변한다.

팔월부터 콩과 태양초를 준비해 메주와 고춧가루를 만들고, 정월부터 6개월 이상 숙성과정을 신경쓰다 보면 일 년 내내 쉴 틈이 없다.

게다가 중간 중간 뚜껑을 열어 햇볕을 쬐고 궂은 날엔 비가 들어갈세라 얼른 뚜껑을 닫아야 한다.

잔손질로 치면 ‘물가에 어린아이 놓은 격’으로 일 년 365일 중노동을 하는 셈이다.

현대 과학기술을 빌려 편하고 쉬운 방법이 있지만 몸이 고달파도 애써 외면한다.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드는 고추장이 바로 한국인의 전통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고추장이 하나의 완성품으로 되기까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셈이다.

명인은 돈 대신 시간과 정성을 선택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명인은 음식솜씨가 빼어났다.

하지만 대대손손 고추장을 만드는 집으로 시집 온 명인은 호된 시집살이를 거쳤다.

음식을 잘 한다고 자부했건만 시어머니의 솜씨를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엄한 시집살이를 통해 명인은 조씨 가문의 전통음식 솜씨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잠도 못자고 눈물 훔치기가 매일 반복됐지만 독한 시집살이를 통해 고추장 만드는 것을 배우지 않았다면 현재의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명인은 자신을 호되게 가르쳤던 시어머니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존경한다.

시어머니 같은 훌륭한 스승을 만났으니 운도 좋았던 셈이다.

원래 음식솜씨가 좋았고 시어머니의 솜씨가 전수됐으니 명인의 손에선 명품 고추장이 나오는 것은 자명한 결과다.

“음식은 경험이다.

특히 한국 음식은 경험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내가 만드는 고추장은 집안의 깊은 경험이 엄격하게 대물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여기에 명인의 오랜 연구와 축적된 연륜도 한 몫 했다.

고추장의 명성이 높아지자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방문자들의 발길이 순창집을 넘나들기 시작했고, 택배판매도 늘어났다.

제품을 생산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보관과 판매까지 하다보니 일이 두 배로 늘었다.

고추장 담을 그릇과 포장지도 사야하고 상표도 만들어야 하고, 고추장 팔아 들어온 푼돈이 목돈이 되기도 전에 쪼개 쓰기 바빠졌다.

특히 일일이 사람 손으로 고추장을 만들다보니 농번기엔 일손 구하는 것조차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각종 유혹도 잇따랐다.

생산만 하고 판매는 대신 해주겠다는 제의도 들어왔다.

심지어 기계 설비를 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명인은 한사코 거절했다.

전통을 고수해 고추장 만들기에 평생을 보낸 그로선 납득하기 힘든 제안이기 때문이다.

나날이 좋아지는 품질과 높아지는 평판이 전통을 고수했던 결과임을 감안하면 기계 설비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손맛과 기계맛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전통을 고집하며 외길 인생을 걸어왔던 명인은 이제 ‘할머니’가 됐다.

고추장 독에 빠진 인생과 고추장에 대한 애정이 자식에게로 이어졌다.

이제 문옥례 고추장은 아들 조종현씨 몫이 됐다.

자식에게 힘든 일을 물려주려니 안쓰럽고 안타깝지만 자식 사랑보다 더 큰 고추장에 대한 애정에 어쩔 수가 없다.

아들 조종현씨는 어머니가 평생 했던 가업을 젊은 감각을 도입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고 세계시작 개척을 위한 ‘고추장 보부상’을 자처한다.

“가업으로 내려왔지만 시대가 변했다.

전통의 명맥은 유지하되 현재에 맞는 식품개발에 주력할 예정이다.

유통과정이 까다로운 발효식품인지라 수출은 꿈도 못꿨지만 살균기법이 발달해 수출 진로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이런 그의 열정 탓일까. 장아찌, 고추장, 된장 등이 세계 100여개국에 수출되는 성과를 거뒀고, 마요네즈보다 수출량이 앞서는 결과도 낳았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고추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방송출연 요청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비록 대한민국 전통음식이지만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날이 올 것이란 게 조씨의 기대다.

그것이 우리 전통음식이 살아남는 길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어머니가 걸어온 길을 지키겠다.

여기에 한정된 시장을 넘어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새로운 맛의 고추장을 만들겠다.

해외시장 진출이 커진다면 역으로 내수판매도 늘어날 수 있다.

문옥례 고추장의 행보를 지켜봐달라.”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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