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사요? 학생 마음읽고 아픔 나눴을 뿐"
"참교사요? 학생 마음읽고 아픔 나눴을 뿐"
  • 조석창
  • 승인 2015.05.14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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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직 통보 복귀 뒤 국어교사서 상담교사로 전환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어 대안학교 선택 주말대기-경찰서 출동 다반사지만 보람
▲ 현장에서 자신의 임무를 다했을 뿐이고, 학생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있다며 인자하게 웃는 황희용 전북동화중학교 상담교사.

“내가 그런 자격이 있나요. 다른 분을 찾아보세요.” 거절의 뜻만 수화기에 맴돈다.
자신보다 훌륭한 교사가 더 많다는 것이다.
몇 번이나 시도한 요청 끝에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카메라를 보더니 또 다시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뒷모습을 찍으라는 요구도 나온다.
현장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했을 뿐, 신문에 소개될 정도의 ‘참교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몇 번의 설득 끝에 인터뷰가 진행됐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만의 교육철학을 이해하게 됐다.
굳이 상세한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학생들 행동 하나하나 신경을 썼고, 그를 찾는 학생들의 노크 소리도 빈번했다.
학생을 위해 살아가고 학생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있다는 황화용(54) 교사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30년 넘는 교편생활이 녹록하지 않았다.
전교조에 가입된 후 해직됐다.
복직이 이뤄진 후 국어교사에서 상담교사로 전환했다.
근무하기 꺼려하는 대안학교를 자진해서 선택했다.
아이들과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마음을 열고 참된 교육을 진행하고자 하는 바람에서다.

/편집자주

   

황화용 교사가 근무하는 전북동화중학교는 정읍 태인 산자락에 자리 잡은 전국 최초 공립 대안학교다.

중도 탈락한 아이들, 학교를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모여 새로운 시작을 찾는 곳이다.

자칫 방심할 경우 사회범죄로 빠질 수 있는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으로 한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거친 아이들과 상대하다 보면 진이 빠지기 일쑤다.

일반 학교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학교를 황 교사는 직접 택했다.

당초 국어교사였던 그는 상담교사로 전직했다.

대안학교에서 상담의 역할이 클 거란 판단에서다.



“상담은 아이들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읽고 힘든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래야 소통이 된다.

어려운 때 필요한 부분을 제공하는 것으로 교사와 학생의 일반적 관계와는 다르다.”

 

그러다 보니 학교를 벗어나 아이들의 가정과 사회적 개입까지 발생한다.

학교 밖의 일이지만 학생과 직접적으로 연계되기 때문이다.

가정의 경제적 문제, 부모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점을 비롯해 특히 사회적 개입은 가정 자체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교사로서 분명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럴 땐 항상 마음이 불편하다.

아이들의 심적인 의지 외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1983년 국어 담당으로 교편을 잡았다.

동화중학교 개교 TF팀에 근무하면서 합류했다.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대안교육을 처음 접했다.

인문계나 실업계 등 다양한 학교형태가 있지만 대안학교가 교육의 근본이라는 생각도 이 때 들었다.

공감하는 교사들과 기존 사립 대안학교를 방문하며 공립학교에 접목을 시도했다.

제도적 특성상 일반학교에 도입하기 어려워 당시 전문계고를 상대로 대안학급을 임시 운영했다.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 뿐 아니라 교사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정부분 성공을 거뒀다.

아이들의 자존감이 높아지고 중도탈락 학생의 수가 현저하게 줄었다.

다른 학교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음은 당연한 결과다.

또 현재 동화중학교가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

그는 이곳에서 해박한 상담이론에 감정코치를 바탕으로 아이들 상담에 임하고 있다.

마음의 상처, 깨진 가정 등 결격사유가 있는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다.

윽박지르기 보단 차분한 상담으로 아이들 마음을 여는데 노력하고 있다.

주말에 대기하는 것은 다반사고 심지어 새벽에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면 뛰쳐나가기 십상이다.

일 년 내내 비상대기조로 살고 있는 셈이다.

또 모든 원인은 부모에게 있다는 판단아래 한부모 교육에도 전념하고 있다.

특히 성에 노출된 아이들, 주말에 집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본인 집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다.

항상 유순한 표정으로 어려운 일을 풀어나가 학부모 신뢰도도 높아져 심지어는 가정사 문제도 상담의뢰가 들어올 정도다.

이 뿐만이 아니다.

위기 상황 발생시 적절한 조치로 해결하지만 그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도 한다.

대안학교 선두에서 교유과정 개발에도 앞장서 왔고, 일선학교에서 학교폭력 등의 대처방안 해결책 강의에 나서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료교사들도 칭찬에 인색하지 않는다.

온영두 교장은 “영낙 없는 페스탈로치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

아이들이 변해가고 있다.

그 산파역할을 하고 있는 게 황 교사다.

욕과 폭력이 난무하는 아이들을 상대로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표창 올리는 것도 마다할 정도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직접 현장에 와보니 기존 교육철학의 수정과 수정의 반복이 진행됐다.

동료 교사와의 관계, 학생들과의 관계를 통해 부족한 자신을 매일 느꼈다.

아이들의 어려움 유형도 너무 다양해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그가 내놓은 해결책은 유형별 전문가의 손길이다.

각각의 유형에 따라 해당 관계자의 자문을 구하고 치유도 분야별로 진행했다.

혼자 힘으론 할 수 없어 동료 교사들과 함께 공유했다.

교육은 종합예술이며 오케스트라라는 말을 이 때 실감했다.

학창시절 그의 꿈은 교사가 아니었다.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교육의 수혜자였던 때를 탈피해 대학을 다니면서 교육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교직에 대한 꿈이 자라났다.

30년이 넘는 교직생활을 했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어려운 점은 있었으나 깨지 못할 바위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교편을 잡은 후 그는 전교조에 가입했다.

초임 근무하던 학교에서 이호덕 교사를 만나면서 삶을 위한 교육사상을 배웠다.

당시 정권의 압력이 거셌지만 전교조의 논리에 공감하며 자연스럽게 발을 담그게 됐다.

1989년 일이다.

하지만 이내 교직을 떠나게 된다.

전교조가 출범하자마자 정부는 탈퇴서를 강요했고 이에 불응한 교사들은 교단을 떠났다.

이른바 해직교사가 된 것이다.

교직을 떠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다시 되돌아올 가능성을 기대한 채 해직의 길을 걸었다.

함께 전교조에 가입한 남편도 상황은 마찬가지로 해직 부부교사는 퇴직금으로 생활을 충당하며 훗날을 기약했다.

경제적으로, 심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지만 이때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여기고 있다.

학교 밖으로 나가니 오히려 학교가 잘 보였다는 것이다.



“밖에 나가보니 그 동안 추상적으로 보였던 학교가 구체적으로 보였다.

복직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해직 기간이 긴 시간을 아니었고 다음 교직생활을 위해 좋은 계기가 됐다.”

 

교육자의 입장에서 자식교육도 궁금했다.

밖의 일에 몰두하다 자칫 집안일에 소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 딸이 하나 있다.

학교생활로 엄마의 빈자리가 컸고, 심지어 고3때도 신경 쓰지 못했다.

하지만 앞서가기보다 묵묵히 뒤를 뒷바라지하는 부모의 역할에 주력했다.



“내 자식은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돌이켜보건대 잘 키운 것 같다.

대안교육마인드를 바탕으로 한 삶과 관련된 교육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을 강요하고 억지 장래를 원하지 않았다.

아이도 만족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는 상담교사로 남을 예정이다.

대안교육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넘었고 마무리할 시간도 10여 년이 남았다.

아이들이 힘들 때 지켜주고 잘 커갈 때 보람을 느낀다.

30대 중반을 넘긴 제자들이 지금도 그를 찾는다.

성인이 된 제자와 함께 삶을 나누는 게 좋다.

만약 학생시절 때 잘못 됐다면 오늘날 만남이 이뤄질 수 있을까 생각만 하면 더욱 책임감이 막중해진다.

선생이란 단어는 그에게 무얼 의미할까.

 

“선생은 먼저 살아간 사람이다.

먼저 산 사람이 올바르게 살고 그 길을 따라오게 하는 게 교육이다.

특히 상담교사는 아이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감동을 나누는 것이다.

교육의 본질은 감동받은 아이들이 그 감동을 후손에게 오롯이 전달하는 것이다.”

 

지식전수도 교육의 역할 중 하나지만 주입식 교육보단 아이들 삶과 연계된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삶과 괴리된 교육은 사장된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다른 대안학교를 꿈꾸고 있다.

올해 전북동화중 근무기간이 만료된다.

현재 전북은 공립 대안고등학교 설립을 추진 중이다.

그는 이곳에서 또 다른 나래를 펼 준비를 하고 있다.

그곳이 어디든 자신의 역할이 분명 있을 거란 확신에서다.

이제는 중학생이 아닌 고등학생이다.

고민이 다양해지고 욕과 폭력이 더욱 많아지겠지만 과거 동화중을 선택할 당시 초연의 모습을 유지할 심산이다.

본인이 흔들리면 학생들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학생들 미래에 밝은 햇볕을 비춰줄 수 있다면 작은 몸 하나 희생할 각오다.

그게 교사의 역할이고 앞으로도 그 역할에 충실히 임할 계획이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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