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황등출신··· 생모떠나 이모 박초월 밑에서 자라 7살때 재능알아보고 통달로 변성기 오자 소리안나와 목에 칼대 자살 결심도 고비 이겨낸것도 역시 소리

▲ 세상 모든 소리를 담아내며 평생 소리를 했지만 후회없이 행복하다는 우방 조통달 명창.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있다.
조통달 명창을 직접 만나면 영락없다.
호탕한 성격에 시원시원한 말투는 작은 키를 상쇄시킨다.
한 시간 가량 늦게 도착했지만 ‘그럴 수도 있지’란 표정이다.
괜히 더 미안해진다.
인터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진행됐다.
구수한 명창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울다 웃다를 반복한다.
화려하고 거침없는 언변을 듣노라면 말 역시 소리일 터. 그는 타고난 소리꾼임에 틀림없다.
우방 조통달(70) 명창을 만나보자. 
/편집자주

 

 

“뱃속에서부터 소리를 배웠다. 내로라하는 명창들 소리를 듣고 자랐으니 내가 가야할 길은 뻔하지 않은가.

평생 소리를 했지만 후회는커녕 무척 행복하다. 남은 여생도 그렇게 보낼 것이다.”

 

익산 황등 출신인 조통달 명창은 태어나자 생모의 곁을 떠나 이모 밑에서 자랐다.

손이 귀한 시절 양자로 가는 것은 흔한 시절이었다.

어머니라 부르는 이모는 그 유명한 여류 명창 박초월이다.

조통달 명창은 갓난아기 때부터 타고난 능력으로 주위를 놀라게 해 피를 속일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당연지사 소리하겠다고 나서니 박초월 명창이 만류했다.

소리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돈도 못 벌고 사람들이 멸시한다는 이유에서다.

소리를 하면 몽둥이로 팰 정도였다.

하지만 타고난 끼와 재능을 알아챈 박 명창은 ‘이왕 할 것 제대로 해라’란 의미에서 이름을 ‘통달’로 바꿔 주었다.

무엇이든지 통달하라는 뜻에서다.

본명인 조동규에서 조통달로 태어난 게 일곱 살 때다.

13살 때인 1959년 전국명창대회에서 장원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당시 2등은 조상현 명창으로 이 때 인연으로 의형제까지 맺었다.

상복이 많다.

어느 대회든 출전만 하면 일등을 했다.

상복보단 그만큼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시련도 있었다.

변성기가 오자 소리가 나지 않게 됐다.

소리를 그만 둘까 생각하다 자살도 결심했다.

목소리가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목에 칼을 댄 순간도 있었지만 타고난 호쾌한 성격으로 슬기롭게 헤쳐 나갔다.

연습에 연습을 더하면서 막힌 소리를 뚫고 소리인생 최대고비를 풀어갔다.

호는 우방이다.

임방울 선생의 재림이라는 뜻이다.

인물화의 대가인 금추 이남호 화가가 1982년 전주대사습전국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한 그를 보고 붙여줬다.



“감히 내가 임방울 선생과 비교가 되겠느냐. 흉내만 내는 수준이다.

하지만 임방울, 박초월 선생에게 공부를 했으니 붙여진 것이라 생각한다.”

 

연예인들과 인연이 많다.

조정현, 김병조, 백남봉, 남보원, 박항서씨 등이 그를 거쳐 갔다.

가수들이 소리를 배우면 배에 힘이 생겨 훨씬 소리내기 편하기 때문이다.

가수 뿐 아니라 목을 많이 사용하는 강사들도 명창을 찾았다.

강의를 오래 하다보면 목이 쉽게 쇠지만 배우고 나면 목이 좋아짐을 느끼기 때문이다.

소문이 나자 전국 강사들이 그를 찾는 줄이 이어졌다.

그는 대구 앞산이란 곳에서 100일 동안 공부하며 득음을 했다.

그가 말하는 득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소리의 서사적인 면, 시적인 면, 소설적인 면, 희극적인 면을 두루 갖춰야 한다.

득음은 배꼽 밑의 단전을 올려야 한다.

일단 득음을 하면 몇 시간 소리를 내도 목이 나빠지지 않는다.

하루 종일 소리를 하게 되면 땀이 증발해 소변도 나오지 않는다.

배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다.

또 소리를 한창 지를 때는 심지어 잠도 온다고 한다.

득음은 이런 과정을 이겨내고 끈기 있게 지구력을 가지고 밀고 나가야 가능하다.

아들인 가수 조관우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아들 이야기를 꺼내자 잠시 침묵한다.



“소리하느라 아들을 무관심하게 키웠다.

애비 없이 자랐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또 내 그늘 아래 빛을 보지도 못했다.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최근까지도 잊어버리지 않고 있더라.”

 

슬프게 컸기 때문일까. 조관우씨도 이른바 성음을 통해 ‘늪’이란 노래도 인기를 얻었다.

대구 팔공산에서 가수로서의 득음을 했다.

하지만 아들이 노래하는 것에 대해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배고픈 직업을 선택한 아들과 같은 길을 걷는 것에 반대했다.

수 십년 전 박초월 명창이 반대했던 것과 같은 이유다.

특히 아들의 가성목소리를 고자성음이라 해서 무시한 적이 있었다.

사람 목소리가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서양 오페라계를 보면 거세를 해 가성을 지르는 ‘카스트라토’란 존재가 있었다.

카스트라토는 가성 같은 진성 목소리로 음악계를 압도했다.

아들은 거세를 하지 않고도 완성된 가성을 선보였다.

독특한 목소리며 본인도 이때서야 아들을 인정했다.

66년 소리인생이다.

잘난 체 하지 않고 살았다.

매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보통 집안에 영웅이 나면 위아래 세대가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통달의 집안은 박초월 명창 이후 음악적 대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본인은 인간문화재의 반열에 올랐고 아들은 가수로서 명성을 얻었다.

손자도 음악의 길을 걷고 있다.

물질적 욕심은 없지만 하느님이 주신 복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굶지 않으면 된다.

나는 소리를 계속할 수 있고 아이들이 잘 자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것보다 행복한 나날이 어디 있겠는가?”

 

본인의 소리는 수리성과 천구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평이다.

성음이 좋고 특히 바이브레이션이 구성지다.

어릴 때 동초 김연수 선생을 사사해 동초제 계보도 잇고 있다.

고수 김동준과 국창 오정숙 명창에게 춘향가를 배웠다.

임방울 선생에게는 적벽가과 수궁가를 배웠다.

명창만의 독특한 성음으로 기존에 전혀 들어보지 않은 소리가 나온다는 평을 받고 있다.

좋은 소리란 무엇을 뜻할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소리가 다 다르다.

쉰 목이면서 독특한 소리가 있고, 생생한 목소리는 왠지 연륜이 부족해 보인다.

최근 전주대사습 심사를 맡았다.

모두 다 대상감이지만 그는 연륜이 있는 소리에 점수를 줬다.

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의 관록과 경험이 나온다.

또 소리꾼은 그 경험을 소리에 담아내야 한다.

소리로 성공해야겠다는 사람은 무조건 피한다.

잔꾀를 피우는 잔머리꾼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소리를 배우는 자세가 틀렸다는 것이다.

소리와 사생결판을 내야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일대일로 싸워 소리를 이겨내야 한다.

소같이 미련하게 꾸준하게 외길을 가야 한다.

그래야만 소리의 모든 것을 갖출 수 있다.

또 세상의 모든 소리도 다 낼 수 있다.

갑자기 뻐꾸기 소리를 낸다.

정신 없이 메모하다 고개를 들었다.

영낙 없는 뻐꾸기 소리다.

산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뻐꾸기 소리 정도는 우스울 정도다.

심지어 뻐꾸기들도 사람인 줄 모르고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몰려든다고 한다.

이렇듯 소리꾼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귀신소리, 바람소리, 사람소리 등 모든 소리를 자유자재로 다뤄야 한다.

또 다른 면에서 득음이다.

인분 100그릇을 먹고 득음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이 아님을 강조한다.

예전 재래식 화장실에 시퍼런 대나무를 잘라서 서너 개씩 묶어 담가둔다.

100일 후 꺼내 칼로 자르면 대나무 안에 물이 생긴다.

정종같이 노란 국물이 대나무 한 마디에 소주잔 3분의 2정도 나온다.

약이 됐음은 말할 나위 없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인분 100그릇’이란 별명이 생겼다.

최근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여기저기 인터뷰에 각종 대회 심사, 학교 강의, 방송출연 등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이것은 하느님이 주신 복이라 칭했다.

그래도 나이 먹음은 피할 수 없어 학교 강의는 전북대와 우석대 단 2곳으로 줄였다.

30대 중반부터 하와이, 일본 등 외국공연을 많이 다녔다.

방송출연도 제법 하면서 아들보다 인기가 많은 적이 있었다.

한 때는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도 차지했었다.

방송에서 ‘엄마야 누나야’를 부른 이후다.

심지어 조관우 팬까지 자신을 좋아하게 됐다.

하지만 조심스럽다.

판소리와 가요의 접목은 필요하지만 너무 지나침은 아니한 것보다 못한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애제자 유태평양같은 대중적 스타도 키우기도 했다.

각박한 사회다.

소리는 이런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농축된 원액이란 게 명창의 생각이다.

사람의 희노애락이 담긴 게 소리라는 것이다.

당연히 소리를 들으면 사람이 선해질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지구촌에 판소리학과를 만들어 기막힌 소리를 알리고 싶었다.

미국 UCLA대학에 민속음악 과목이 있는데 아직 판소리가 포함돼 있지 않다.

애석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판소리는 우리 음악의 꽃이다.

무용, 악기에 비해 소리는 가사가 있다.

또 무용의 연기와 악기의 소리 또한 판소리에 내포돼 있다.

이런 소리를 알려야 한다.”

 

30여 년의 방랑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익산에 둥지를 폈다.

금마면에 있는 조통달 판소리전수관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하루 종일 북소리, 장구소리 등이 동네로 퍼진다.

전수관 뒤 마당에 학습장과 체험장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선 일 년 내내 소리가 나는 무대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해외에 판소리학과가 생기기 위해선 작게나마 이런 시작을 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조만간 익산시 금마면을 찾으면 소리가 한창 피어오르는 전수관 모습을 쉽게 떠오를 수 있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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