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한강이남 최초 한옥 성당 박해 피해 숨어든 신자들 거주 한국전쟁 때 전소로 2009년 복원 성당 터 기념물 제 119호로 지정

▲ 1895년 한강 이남 최초 한옥성당으로 알려진 되재 성당은 한국 전쟁때 전소되며 2009년 지금 이 모습으로 복원 되었다.
▲ 오랜만에 찾은 성당은 현재 종탐 공사가 한창이다.

완주군 화산면 경천저수지를 따라 구절양장 같은 길을 가면 만날 수 있다.

되재성당이다.

1895년 한강 이남 최초 한옥성당으로 알려진 이곳은 오랜 세월을 알리듯 질곡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완주군 화산면 승치 원승마을은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거주한 곳이다.

당시 이 지역은 신유박해 이후 신자들이 몰렸고, 병인박해 때에는 교우촌이 56곳이나 됐다고 한다.

신자들이 집단 거주했으니 믿음을 밝혀줄 성당건립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되재성당은 고산 본당의 전신이었다.

서울 약현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완공된 본당으로 한강 이남에서는 처음 세워진 본당이다.

약현성당이 벽돌로 만들어진 것에 비하면 되재성당은 한옥으로 지어졌다.

하지만 단층 5칸짜리 한옥성당은 한국전쟁 때 완전 전소됐고, 1954년 양철지붕의 공소건물이 대신 만들어졌다.

하지만 슬라브로 지붕을 얹은 되재성당은 원래 건물과 판이하게 달랐고 이후 2009년 원 모습과 가장 가까운 형태로 복원됐다.

실내엔 1895년 만들어진 되재성당의 사진이 있는데 현 모습과 비교하면 나름 비슷하긴 해도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전쟁 때 소실된 점도 안타깝고, 또 허물어진 슬라브 성당도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성당은 서양 바실리카식 교회 건축양식을 한식 목구조로 바꿔 만들었다.

단층인 한식 목구조에 지붕은 기와를 얹은 팔작집이다.

내부는 남녀칠세부동석에 따라 남녀 신도가 앉는 공간이 분리돼 있다.

익산 두동교회나 김제 금산교회도 같은 시대상을 반영했는데 이곳들이 ㄱ자 형태로 구분한 것에 비해 되재성당은 커다란 나무로 중간을 막은 형태가 이색적이다.

천주교가 이 땅에 들어올 때 우리 고유문화와 충돌하지 않으려는 배려로 여겨진다.

전라북도는 2004년 성당 터를 전북도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했고, 성당과 종탑 복원사업을 통해 2009년 축복식이 진행되기도 했다.

오랜만에 찾은 되재성당은 종탑 공사가 한창이다.

낡아 버린 건물과 삐뚤삐뚤한 나무기둥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옛 모습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천주교 역사와 성당 건축사를 알 수 있어 이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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