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백제 후기의 문화 유산 8.5m 높이 웅장하고 장중함 갖춰 남-여 나타내는 '동고도리 석불' 사시사철 변하는 호남의 수문장

▲ 왕궁리 오층석탑은 1998년 사적 제408호로 지정되면서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까지 발굴조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 사시사철 변하는 호남들녘에서 동고도리 석불이 옛 백제 땅을 지키고 있다.

오층 석탑이 있는 왕궁리 유적을 비롯한 백제 역사지구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전북은 미륵사지와 더불어 두 곳이 포함되면서 찬란했던 백제 후기 문화가 우리 지역의 자랑스런 문화임을 증명했다.

과거 이곳은 오층석탑만 덩그러니 있던 벌판이었다.

수많은 탑 중 하나로 여겨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해왔다.

하지만 1998년 사적 제408호로 지정되면서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게 됐고, 1989년부터 현재까지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왕궁리 유적지는 백제 무왕 때 왕궁으로 건립됐고, 후대에 왕궁이 허물어지고 사찰이 건립됐다.

왕궁은 고대왕궁 양식에 따라 만들어졌고 왕이 정사를 돌보는 건물을 비롯해 14개 건물과 대형화장실 등이 발굴됐다.

왕궁터 언덕 위 툭 트인 곳에 있는 오층석탑은 1997년 국보 제289호로 지정됐다.

땅 속에 파묻혀 있던 기단부를 1965년 해체 수리하면서 원래 모습으로 복원됐다.

해체 과정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됐는데 국보 제289호다.

탑은 넓은 옥개석에 높이 8.5m를 자랑한다.

멀리서 보면 날아갈 듯한 홀쭉한 모습이지만 가까이 갈수록 웅장하고 장중하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보는 느낌이 다르다.

건립된 정확한 연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천 년 넘는 기간 한 자리를 지켰을 것으로 추측된다.

영겁의 세월 동안 잡스러운 세상만사 모든 것을 묵묵히 감내하며 제 역할을 해왔다.

인근 금마로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동고도리 석불도 마찬가지다.

논 가운데 기다란 석불 두 개가 약 2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마주보고 서있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불들은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처럼 끈질긴 생명력과 함께 오층석탑처럼 소박함을 자랑한다.

오층석탑과 더불어 기나긴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킨 것을 생각하면 백 년도 채 되지 않는 인간사는 부질없게만 느껴진다.

이 석불은 각각 남자와 여자로, 평소에는 만나지 못하다가 섣달 해일 자시에 서로 만나 회포를 풀고 닭이 울면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사시사철 변하는 호남 들녘에서 서로 마주본 채 옛 백제 땅을 지키는 수문장인 셈이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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