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마지막 천도지, 왕궁리 유적지
백제의 마지막 천도지, 왕궁리 유적지
  • 박정미
  • 승인 2015.07.23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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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왕궁 유물-생활 등 유적 전시관서 한눈에 왕궁리 터-왕궁리 5층 석탑 세계유산 등재로 주목
▲ 백제왕궁이었다가 사찰로 변한 익산 왕궁리 유적지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다시한번 주목받고 있다.

왕궁리 유적의 본격적인 조사는 미륵사지의 조사가 마무리되던 1989년부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시작해서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왕국의 규모와 형태, 그리고 백제 최고의 정원유적과 귀중품 가공, 그리고 대형화장실과 함께 탑과 관련한 사찰유물까지 다양한 발견을 해 백제 왕궁의 모습이 조금씩 더 구체화 되고 있다고 합니다.
백제왕궁이었다가 사찰로 변한 왕궁리 유적지를 방문해 보았습니다.


 

 

<왕궁리 유적 전시관>

유물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왕궁리 유적 왕궁리 유적 전시관은 백제왕궁이었던 왕궁리 유적의 유물, 그리고 유적의 백제건물, 생활, 왕궁에서의 사찰로의 변화 등을 알 수 있는 장소이기에 왕궁리 터보다 먼저 방문했습니다.

영상관을 지나 전시실로 가는 길에는 백제 문화 연표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에 있는 왕궁리 유적이 눈에 띕니다.

 

 

<영상관을 지나 전시실로 가는 길에는 백제 문화 연표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또한, 왕궁리 터를 한눈에 보기 쉽게 만들어진 미니어처 모형은 불이 반짝거려 사람들의 이해를 도와줍니다>  

왕궁리 터를 설명하기 위한 영상이 그 위치마다 불이 반짝거리며 사람들의 이해를 도와줍니다.

그냥 갔다면 몰랐을 정보를 많이 담아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영상이었습니다.

그냥 터로만 보였던 왕궁리 유적지의 진가는 유물 발굴로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많이 느꼈습니다.

석조물이나 유물 발견, 그리고 선조들이 남겼던 기록을 통해 함께 왕궁리 터가 얼마나 큰 왕궁이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찬란한 모습의 일부 , 백제왕실 정원 왕궁리 터에는 백제 최고의 정원 유적이 조사되었습니다.

이 정원 유적은 왕궁의 후원과 연결되는 부분에 기이한 괴석과 장대석, 하천석 등을 조합하여 물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희귀한 식물이나 동물을 모아 정원에 두었다라는 사실이 쓰여 있기도 한 정원은 그 옛날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영상으로 추측해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찬란한 모습 일부만 남아있는 백제왕실 정원, 영상으로 추측해 볼 수밖에 없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백제 왕궁만큼이나 가치 있는 왕궁의 부속시설

 

<왕궁 내에서 보석을 가공했던 공간, 공방지>

금, 유리 동의 제련과 제품의 생산시설인 공방지는 금연주, 금고리, 금판 등의 금제품과 유리제품, 동제품과 함께 제련과정에서 나오는 부속물의 출토로 금, 유리, 동의 생산과 제작이 왕국에서 이루어진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금 같은 경우에는 고대에 가장 귀한 신분계층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백제 무왕이 금을 중요시하여 왕궁 내 생산시설을 들고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백제 시대 최고의 대형화장실 대형화장실은 공방지 주변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공방과 관련된 사람들 대상으로 위생적인 뒤처리를 위해 설치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최소로 발견된 백제 시대 대형화장실이라고 용도를 알 수 있었던 이유는 토광 내부에서 회충, 편충 같은 기생충 알이 발견되었고, 뒤처리용 막대기가 발견되었기에 알 수 있었습니다.

휴지 대용으로 뒤처리용 막대기를 쓰거나 푸세식 화장실과 별 다름없는 모습에 선조들의 위생관리가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발달 했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백제 시대 최고의 대형화장실은 휴지 대용으로 뒤처리용 막대기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왕궁리 터와 왕궁리 5층 석탑 5층 탑 등 사찰 관련 유적은 왕궁의 용도가 폐기된 후 왕궁의 중요 건물 위에 사찰을 지은 것입니다.

왕궁의 중요 건물이 위치해야 할 자리에 사찰유적들이 있고 석탑의 하부에서 목탑지 또는 선행한 왕궁 건물지의 흔적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백제 왕궁의 건물을 철거하고 그 위에 사찰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어떤 이유로 사찰로 변화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진 않았습니다.

바뀐 시기도 삼국사기의 기록을 통해 의자왕 전후로 바뀐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왕궁리 유적>

아직도 신비한 이야기가 많이 밝혀지지 않은 익산의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지. 둘러볼 부분이 많이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지만, 이 곳의 방문 옛 백제의 모습과 예술문화를 짐작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백제 후기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을 보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어떤 이야기가 우리를 더 놀라게 할지 기대가 커졌습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세계가 인정한 백제의 문화, 그 발자취를 찾아 익산으로 떠나 보시길 바랍니다.

/자료제공=전북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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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왕궁리 유적 가는 방법

익산역 - 미륵사지 시내버스 : 41, 41-1, 60, 60-1

익산역 - 왕궁리 유적 시내버스 : 65, 65-1, 63, 63-1, 78

미륵사지 , 왕궁리 유적 입장료는 모두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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