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조립식 건물로 지어진 생소한 절 겉모습과 달리 다양한 설화-역사 간직 석굴 속 미륵불 절의 든든한 버팀목

▲ 단암사의 미륵불.
▲ 완주군에 위치한 단암사는 조립식 건물로 지어져 생소한 모습이지만 수 많은 역사와 설화를 간직한 곳이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이 떠오른다.

수도 없이 지나간 길이지만 단암사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렵사리 찾아간 단암사는 일반 절과 다른 모습이다.

평지에 위치해 있어 접근은 쉽지만 단아한 한옥지붕을 한 사찰을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위치를 알고 찾아가도 긴가민가할 정도다.

단암사 대웅전은 트럭으로 운반이 가능한 컨테이너박스로 돼 있다.

고개를 밑으로 하면 트럭 바퀴가 땅을 지지하고 있다.

조립식 건물들이 조합된 형태다 보니 주차장에서 바라봐도 절 모습을 연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단암사의 역사는 겉모습과 딴판이다.

고려말 서암이 창건했다는 정설과 함께 백제 무왕때 서암대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또 진묵대사가 머물면서 한 때 이름이 다남사로 불리기도 했다.

단암사에서 기도를 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발음하기 편한 다남사로 불렸을 가능성도 높다.

단암사의 가장 큰 특징은 석굴 속에 있는 미륵불이다.

바로 앞에 미륵전이 위치해 있어 보이진 않지만 계단을 걸어가면 석굴 속 미륵불을 만날 수 있다.

크기는 1m 내외이며 조성 시기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확한 진단이 끝나면 보물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게 단암사측의 설명이다.

미륵전이 세워지기 전에는 비바람을 맞으며 자리를 지켰을 것으로 여겨진다.

단암사에 대해 전해지는 설화는 상당히 많다.

그 중 하나는 진묵대사가 제자와 함께 절에 머물 때 바위 구멍에서 쌀이 나왔다.

진묵대사가 입적한 후 제자는 그 구멍을 더 크게 팠는데 쌀은 커녕 물만 나왔다고 한다.

또 조선초 가난한 선비가 단암사에서 과거공부를 하던 중 동굴 구멍에서 쌀이 나오자 욕심이 나 크게 팠다고 한다.

그 후에도 역시 물만 나왔고 선비는 후회하며 과거를 포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설화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이 앞을 지나갈 때 말이 무릎을 꿇고 움직이지 않자 이상히 여긴 왜장이 단암사 굴을 보니 미륵불을 보게 된다.

이곳에 머무르며 하루 동안 기도를 드리자 비로소 말들이 이동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유재란 때 왜군이 금산사를 비롯한 사암들을 대대적으로 불태웠고 단암사도 이 때 소실됐다.

그 후 진묵대사가 동굴 속에 미륵전을 짓고 중창한 것으로 전해진다.

완주를 굽이치는 서방산에서 종남산 자락의 단암사는 산이 아닌 곳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많은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어제의 영화를 뒤로 한 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단암사는 불쑥 찾아간 이방인을 오늘도 말없이 맞는다.

/조석창기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