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맹점은 또 있습니다.

선거에 의해 정권이 교체된다고 하지만 전(前) 정권을 이어받아 실무에 임하는 데까지 적지 않은 기간이 소요되고,  임기 말에는 레임덕 현상으로 공백기가 생겨납니다.

이런 기간을 빼고서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동안 위정자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야 하므로, 근본적인 오류를 바로잡아 사회와 국가를 발전시키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요. 5년이라는 임기는 하나로 일관된 정책을 정치‧경제‧경제‧사회‧문화 등의 각종 방면에 소신 있게 펼치기에는 다소 짧은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상을 통합하여 취사선택한 새로운 이념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즉 인간의 기본적이고 성스러운 욕구조차 배제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단점을 타파하고, 욕심의 자극이라는 자본주의의 장점을 취하면서도 그 병폐인 개인주의를 극복하는 사상, 국민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장점은 취하면서도 중우정치와 짧은 임기로 소신 있는 정치가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점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대안은 의본주의에 있습니다.

의본주의는 수천 년 우리 사회에서의 축적된 경험에서 얻어진 최고의 사회 정책이며 21세기를 이끌어 갈 국가적 치인론(治人論)입니다.
 

 

의(義)의 올바른 의미    

그럼 지금부터 의본주의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합시다.

의본주의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義)가 무엇인지부터 아는 것이 순서겠죠? 일반적으로 ‘의리가 있다, 없다’고 할 때 쓰는 의를 우리는 어떤 의미로 쓰고 있나요? 뜻을 함께하는 친구가 도중에 의견을 달리하여 무리를 이탈할 때 의례적으로 ‘의리가 없다’고 사람들은 표현합니다.

비록 그것이 나쁜 일이라 하더라도 끝까지 나와 함께 하는 친구에게 ‘의리 있는 친구’라고 칭찬하기도 하죠. 이런 것을 보면 ‘배신하지 않는 것, 한번 세운 뜻을 바꾸지 않는 것’을 ‘의리 있는 것’으로 동일시하여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의(義)’를 정확하게 알고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사례를 한번 들어봅시다.

은(殷)나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주(紂)임금은 포악무도한 왕이었습니다.

후에 무왕(武王)에 의해 주(周)나라가 은나라를 멸하고 다시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게 되죠. 그런데 술로 연못을 채우고 육포를 나뭇가지에 걸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국고를 탕진하였던 폭군 주임금에게도 충신이 있었습니다.

친척이었던 기자와 왕자비간 그리고 미자였죠.기자는 세 번 간하여 왕이 듣지 않자 미친 척하여 노예가 되었고, 왕자비간은 심장을 도려내는 형벌을 받아 죽었습니다.

반면 미자는 ‘왕과 신하는 의(義)로써 맺어진 관계라 의에 어긋나면 마땅히 버리고 떠나야 한다’고 주임금을 버리고 떠납니다.

이에 공자는 은나라에 세 명의 어진 사람이 있었다고 회고하지요.여기서 주목할 것은 미자의 행동입니다.

미자는 어버이와 자식은 골육(骨肉)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세 번 간(諫)해도 듣지 않으시면 울부짖으며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나, 군신(君臣)의 관계는 의에 맞지 않으면 세 번 간하고 듣지 않는다면 버리고 떠나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신하가 임금을 배신하고 떠나는 것,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의의 개념으로 보았을 때 ‘의리 없는 사람’이 아닌가요?그러나 공자는 미자를 어진 사람이라고 탄미합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배신하지 않는다고 해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의(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 도적질을 했으면서도 의롭다고 칭해진 조선시대 의적들의 사례를 한번 살펴봅시다.

조선시대 3대 의적이라고 불리는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은 관아를 도둑질하고 국가의 기강을 무너뜨렸는데도 왜 의적(義賊)이라고 칭하였을까요?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지방정부의 살림을 거덜 낸 그들의 행동이 당시 탐관오리들의 부당한 수탈과 학정을 바로잡겠다는 선한 목적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역사에서 천하의 역적이자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무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무장괴한 정도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도둑질을 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당하게 징수한 물건과 곡식을 피해 입은 주민들에게 되돌려주는 한편 관리로 하여금 공포심을 심어주어 더 이상 부정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큰 역할을 했었죠. 도둑질이 오히려 국가의 올바른 기강을 세워주는 역할을 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한 행동이 ‘옳은’ 행동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의적으로 칭송받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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