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정리해볼까요? ‘의(義)’는 ‘배반하지 않음, 한 번 세운 뜻을 끝까지 고수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義)’는 ‘옳다’는 뜻으로 ‘사리 마땅한, 이치에 합당한, 천리에 부합하는’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리를 완전히 통달하여 순리에 따라 나타나는 행동·사고·판단 등을 ‘의롭다’고 하지요. 곧 한번 나쁜 뜻을 품어 나쁜 행동에 동참하더라도 마음을 고쳐 회개하고 선한 일을 베풀며 살면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의는 천리와 인륜에 부합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도중에 뜻을 바꿨다고 의롭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면 오히려 바꾼 것이 의로운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도둑질을 한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도, 임금을 버리고 떠난 미자도 모두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의본주의를 제대로 실천하려면  그렇다면 천리(天理)란 무엇인가요? 천리에 부합하는 행동이 의로운 행동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천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천리란 시대가 변하여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이치를 말합니다.

마치 어버이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시대가 변하여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유학에서는 ‘어버이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같이 사람에게는 변하지 않는 선한 본성이 있으며 그것을 인(仁)·의(義)·예(禮)·지(智)의 성품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성품의 발현을 네 가지 선한 마음의 실마리라고 하여 사단(四端)이라 칭하였습니다.

성품은 인간으로 나면서 자연스럽게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발현인 사단은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 중 선한 본성으로부터 나온 가장 바른 감정인 것이죠. 그 마음은 다름이 아닌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입니다.

즉, 불쌍한 이를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 잘못을 저지르면 나도 모르게 드는 부끄러운 마음, 겸손하여 스스로 물러나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 배우지 않아도 무엇이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인지 아는 마음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그 중에서도 인(仁)으로부터 발현되는 측은지심은 나머지 감정을 모두 통섭하는 가장 근본적인 마음입니다.

우물가로 아장아장 기어가는 어린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아이가 물에 빠져 목숨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을까요? 거기에는 내가 저 아이를 구하여 남들에게 칭찬을 받겠다는 계산이 끼어있거나 혹은 대가로 돈을 얻어내야겠다는 생각, 아이를 구하지 않았을 경우 나에게 쏟아질 비난이 무서워서 아이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일어나는 그 순간에는 오직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뿐인 것이죠. 이것이 바로 맹자가 사람의 성품이 선하다는 것을 증명한 하나의 예입니다.

사람에게는 근본적으로 ‘사랑하는 마음’, ‘살리려는 마음’, 즉 어진(仁) 마음이 선천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죠. 이 마음은 비단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천지도 이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천지 우주는 본래부터 이런 ‘만물을 사랑하는 마음’, 즉 천지만물을 살리려는 마음으로 운행되고 있으며 그 우주심은 우주가 생겨난 이래 변함이 없습니다.

하늘이 사계절 마다 서로 다른 하늘 기운을 베풀며, 땅이 만물을 품어 기르고 있는 것에는 아무런 치우침도, 사심도 없는 오직 만물을 살리려는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할 뿐이지요.그렇다면 천지가 교합하여 생겨난 인간은 이 우주를 그대로 축소해 놓은 것과 같아서 그 마음을 본받아 어진 마음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치 봄·여름·가을·겨울이 해가 변해도 없어지지 않듯이 인간에게는 인·의·예·지의 선한 본성이 대(代)를 거듭해도 변함없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하늘과 사람이 서로 응하고 있다는 천인상응(天人相應)의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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