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에서는 천지에 운행되고 있는 이 호생(好生)의 원리, 사랑의 원리를 바로 천리(天理)라고 일컫습니다.

그리고 이 천리는 인간에게 그대로 부여되어 선한 성품을 이루게 되지요. 그렇다면 천리에 부합하는 의(義)에 마땅한 일을 하려면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먼저일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선한 본성은 이미 모든 사람에게 갖추어져 있는데 왜 ‘회복’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선한 본성에서부터 나왔다는 사단의 마음을 가지고는 있지만 살면서 수많은 나쁜 감정도 가지며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이 본래 선하다면 도대체 사회의 불합리는 왜 자꾸 반복될까요? 인간의 고통과 번뇌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답은 욕심에 있습니다.

욕심 중에서도 자신만을 위한 욕심, 즉 사욕 때문입니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선한 본성과 함께 일곱 가지 감정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일곱 가지 감정이란 기쁨(喜)· 노여움(怒)· 슬픔(哀)· 즐거움(樂)· 미움(惡)· 욕망(欲)· 두려움(懼)· 사랑(愛)을 뜻합니다.

그 중 욕심은 또 다섯 가지로 세밀하게 분류하여 오욕(五慾)이라 칭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이 욕심이 채워지지 않을 경우 불만족을 느끼고 번뇌하게 되지요.그렇다면 욕심은 마냥 나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절한 욕심은 삶에 있어 필수적입니다.

누구나 먹어야 되고(식욕), 잠자야 하고(수면욕), 생명의 잉태를 위해 성생활을 해야 하고(색욕),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재물도 있어야 하고(재물욕), 열심히 살아온 인생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명예욕) 더욱 더 바른 삶을 살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런 욕심은 적정선을 유지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자신의 분수보다 더 많은 것을 취하고 싶어 하고, 취해지지 않을 경우 불만족을 느끼며 심지어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채우고 싶어 합니다.

감정은 또한 어떤가요. 일상생활을 하면서 칠정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상황에 따라 과할 수도, 또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감정은 의에 맞는 것이지만 과하거나 부족하면 오히려 불화를 초래할 수 있는 불의(不義)한 것이지요.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로 받은 치우친 기운과 그 시간에 형성된 주변의 기운에 의해 인체 속 오장육부의 대소왕쇠(大小旺衰)가 결정되게 됩니다.

정신과 육체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사람마다 이런 칠정의 과불급이 나타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감정의 과불급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선한 본성을 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좇아, 즐거움을 좇아, 쾌락을 좇아 가다보면 선한 본성은 점점 가려지게 되지요. 때문에 선한 본성을 온전히 발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수양을 통해 자신의 치우친 기운을 맑게 정화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옛 선비들이 성현의 글인 경전을 읽어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고, 하얀 옷으로써 몸을 검속하며, 이른 새벽에 일어나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감정이 발하기 전의 선한 성품을 체인(體認)하는 정좌수행을 했던 이유입니다.

 사람의 본성과 욕심에 대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조금 어려운가요? 그러나 위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의본주의를 이해하는 첫 단추입니다.

의(義)를 근본으로 삼는 철학으로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의본주의는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근본 원리를 절대선(善)인 천리에 두자는 것입니다.

때문에 의본주의를 이 사회에 뿌리 내리려면 반드시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개인적 수양을 통해서 사욕을 버리고 본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해야합니다.

대신 성품으로부터 나오는 의로운 욕심, 상생(相生)의 욕심은 자꾸 키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천지가 사랑의 마음으로 만물을 길러내듯 내 자식과 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미루어 너도 나도 상생하고자 하는 욕심을 우리 가족부터 우리 지역사회, 우리 국가에까지 미루어 넓혀 가야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말초적 쾌락이 아닌 진정한 행복에 모두가 가까워 질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의본주의 사회에서 정치가는 성품을 완전히 회복한 어진 사람(仁者), 즉 각자(覺者)여야 하는 것은 자명합니다.

‘政者는 正也라.’ 의로운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서 잠시 사욕에 가려 부정한 행위를 하는 여러 국민들을 올바른 길로 바로잡아(正) 주는 것이 바로 정치(政)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철인 정치는 의본주의의 올바른 정치 모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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