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 한우자조금관리위원장을 만나다

▲ 이근수 위원장 옛모습. 오랜시간 아버지와 함께 한우 곁을 지키며 목장을 키워온 두 아들은 현재 아버지의 오른팔 왼팔이 되어 한우를 통한 나라사랑 경영에 앞장서고 있다.
▲ 한우는 오천년 역사 속에 한민족의 애환이 서려있다며 우리 국민에게 힘닿는 데까지 홍보하겠다는 이근수 한우자조금관리위원장./김현표기자

우리소 ‘한우(韓牛)’ 하면, 떠오르는 단어 3가지가 있다.
바로 ‘5천 년의 역사’ ‘민족의 애환’ ‘나라사랑’이다.
농기계가 없었던 시절, 한우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과 함께 비탈진 밭고랑을 갈고, 무거운 짐을 나르고, 때로는 어린 자식의 학비가 되어주던 존재였다.
단순히 가축의 의미가 아닌, 자식처럼 이름을 지어 부르고 부엌 가까운 곳에 외양간을 지어 처마 아래에 잠을 자게 하는 또 따른 의미에서의 가족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경제 발전이 급속히 진행되며, 한우와의 애환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한우를 업으로 삼던 많은 농가들은 2011 수입 쇠고기 자유화로 인해 60% 이상 폐업했고, 2012년 한미 FTA 때에도 15%가 또다시 폐업했다.
사라져가고 잊혀져 가는 우리네 한우산업 속에서, 35년 간 남다른 애정으로 지킴이 역할을 해내고 있는 전북 익산출신 이근수 한우자조금관리위원장(61)을 본지에서 만나봤다.
/편집자주  

 

지난 9일 오후 5시 전주시 인근 카페에서 이근수 위원장을 만났다.

아담한 키에 흰머리가 희끗한 단발머리의 그는 청바지에 하늘색 자켓을 입고 나타났다.

예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독특한 예술가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소 키우는 일을 예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말로 운을 땠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한우에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머리 속엔 한우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 위원장과 함께 한 3시간은 한우산업의 미래와 지금의 과제 등을 짚어보는 의미있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가을기운이 아련히 느껴지던 9월 초, 도심 속 풍경을 내다보던 그에게 먼저 ‘왜 소를 키우시는 거냐’는 말부터 꺼냈다.

 

 

[명문대 축산학도-35년째 외길]

“기억도 못하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커서 뭐 할거냐고 물으면, 목장을 할거라고 했다네요.”

그는 왜 그랬는지, 지금도 잘 모른다고 했다.

현재는 어릴 적 꿈대로 익산시 낭산면 석천리에 4만1천㎡의 대농장을 가진 부농이 됐다.

한우를 키우며, 지키고 있다는 자존감도 차고 넘쳤다.

하지만 그에게도 모진 세월이 있었다.

‘정 할 게 없으면 농사나 짓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절이라, 고려대 축산학과를 나와서 할 수 있는 게 한우를 키우는 것뿐이냐는 가족의 만류가 심했다.

하지만 그는 졸업 후 1980년대 초 홀연히 익산에 정착했다.

빈 손으로 내려와 천막을 치고, 정부 융자를 받아 한우 5마리로 시작한 것이 어느덧 송아지와 비육우 등 한우 600여두를 키우며 일관사육(번식과 비육을 동시에 하는 것)을 하고 있다.

1979년 9월에 졸업한 이 위원장은 나름 괜찮은 곳에 취직도 했었다.

제약회사에 다니면서 전국 3위 안에 드는 영업력으로 1년 정도 일했다.

돈도 욕심껏 벌어봤지만, 봉급을 받아가며 일한다는 게 성에 차지 않았다.

다니던 직장을 청산하고, 익산으로 내려온 그는 토끼를 키우기 시작했다.

적은 돈을 들여 번식력이 좋은 동물을 선택했지만, 정작 토끼털을 판매할 판로가 없어 2년 만에 가진 돈을 모두 탕진했다.

이후 축산학과 학도답게 젖소를 키워보자며 겁 없이 뛰어들었다가 접어야만 했다.

“젖소는 젖을 짜야 하기 때문에 주변 환경에 매우 예민합니다.

또 젖을 짜주는 일 역시 2시간 가까이 해야 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고 힘이 들어 그만 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러던 중 영농후계자 육성사업을 통해 정부가 저리로 대출을 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한우사업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애초 시작할 때는 종자돈만 모으면 다시 젖소를 할 계획이었지만, 우직하고 온순한 한우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고 한다.

1990년부터 한우를 시작해 35년간 외길을 걸어오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연 매출 12억을 넘는 건실한 목장 주인으로 성공했지만, 지난 3월 한우자조금관리위원장을 맡으면서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대를 잇는 한우산업]

아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물려주고 싶어하는 아버지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될까?그렇게만 된다면 그것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최고의 찬사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이유 탓에 이 위원장은 행복한 아버지다.

큰 아들은 건국대 축산경영학과 박사까지 마쳤고, 작은 아들도 수의학을 공부 중이다.

큰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목장일 돕고 있다.

600여 마리를 키우며 목장의 규모를 키우다보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후계자를 키워야 하는데, 아들이 이 사업을 물려받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맞는지, 큰 아들은 별다른 설득 없이 아버지 곁을 지켜주고 있다.

나중에는 둘째 아들까지 수의학과에 진학하며 가세했다.

한결 어깨가 가볍지 않냐고 묻자, “나 따라 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짧게 답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든든해 하는 속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우리 때는 소만 잘 키우면 됐는데, 요즘 애들은 기록을 중요시 하더라구요. 한우관리 방식도 실시간으로 꼼꼼하게 기록하고, 회계 처리도 깔끔해서 과학적으로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면은 배울 점이긴 하더라구요.”

아들들이 모두 아버지 일에 발을 들여놓자, 그는 다시금 변화에 앞장서야 했다.

아직도 비교우위의 논리에서 농촌, 농업에 종사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것을 개선하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앞으로 한우협회와 한우자조금위원회등을 통해 이런 부정적 인식 개선에 앞장서려고 합니다.

또 주변과 나눔에 동참하는 한우농가 만들기 운동도 펼치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한우사랑, 나라사랑]       

“한우 맛있다는 거 다들 아시죠? 하지만 비싸다고들 합니다.

한우를 파는 식당에 가족과 함께 가서 메뉴판을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 결국 갈비탕을 먹고 온 경험을 한번쯤은 해봤을 텐데요. 한우 농가들도 제 값을 못받는다고 매일 아우성입니다.

이익은 대체 누가 보는 걸까요?”  

이 위원장은 최근 한우자조금위원회 주관으로 TV광고를 하고 있다.

“한우를 사랑하는 게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란 캠페인을 내보내고 있다.

한우에 대한 국민의 사랑과 지지야말로 우리 농가를 지키는 길이란 속내를 품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한우를 사랑하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라지만, 그 비싼 가격에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하기가 어렵다.

이 같은 불만에 대해 그는 “그래서, 협동조합을 곳곳에 설립해 유통마진을 줄이고 농가소득도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을 확산시키려고 합니다.

최근 완주군 쪽에 협동조합을 설립했는데, 기대이상의 매출이 올라 한우농가들도 해 볼만 하다는 의욕을 갖고 추진 중입니다.”

한우농가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설립해 정육식당을 운영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위기감’에서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한우농가들은 5만호 이상이 축산을 접었고, 지금도 수많은 농가들이 위기 속에 한우산업을 이어가야 할 지에 대한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우는 우리 국민에게 밭일을 돕던 일과 먹거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때문에 한우산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농가들의 수익이 보장돼야 합니다.

또 그 후손들이 한우 산업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경제적 지위도 만들어 줘야 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요즘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3월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한 그는 주먹구구식의 정책개발을 탈피하고, 좀 더 과학적이고, 학술적인 탐구에 나설 예정이다.

한우와 우리 국민들의 애환을 담아낼 인문학적 스토리텔링 개발도 착수할 계획이다.

“지역에 내려가서 한우농가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자조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농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자조금의 예산은 감사원 감사까지 받는 등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제3기 후반기 자조금관리위원장이 된 만큼 일선 한우농가들에게 더욱 신뢰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5천만 국민 모두가 한우 먹는 그날까지]

한우의 장밋빛 전망이 그리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지난 1년 사이 한우농가가 17만 명에서 14만 명으로 3만 명이나 줄었다.

사료값은 상승하고 수익성은 점점 떨어져 천직으로 여기던 한우사육을 포기하는 농가가 급증하고 있다.

FTA 등으로 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증가되어 한우고기의 자급률은 40%대로 떨어져 있다.

이 위원장은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농업, 농촌이 붕괴되고 한우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제는 국민의 힘으로 한우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 한우농가들도 이미지 제고와 우수성을 알리는데 앞장서겠습니다.

우리 땅에서 자란 한우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시길 바랍니다.”

이 위원장은 자조금관리위원회 주관으로 11월1일 열릴 예정인 ‘한우데이’행사를 성대하게 치를 계획이다.

한우농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한우 한 마리씩을 기증 받아 지역사회 이웃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장도 마련 중이다.

  

“힘닿는 데까지 계속 우리소, 한우 홍보에 나설 겁니다.

힘에 부치면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우리 국민 모두가 명절처럼 한우먹는 날을 즐겼으면 합니다.”

오천 년 역사 속에 한민족의 애환이 서려 있는 한우를 국민에게 홍보하고, 성실하게 지켜내는 일. 이근수 위원장의 새로운 목표가 됐다.

/박정미기자 jun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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