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모리스와 같이 공리주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하였다가 논란에 휩싸인 예는 실로 찾아보기 어려운 예가 아닙니다.

1970년대 포드사에서 가장 잘 팔린 소형 자동차 포드 핀토는 뒤에서 차가 들이받으면 연료탱크가 쉽게 폭발한다는 문제점 때문에 많은 인명피해를 냈습니다.

피해를 입은 한 차주가 자동차 설계의 결함을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때 포드 기술자들도 이미 가스탱크 폭발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보호 장치를 가스탱크에 설치하지 않은 이유는 연료탱크를 고치는 비용이 그에 따른 이익보다 더 크다는 결론 때문이었습니다.

사망과 화상을 각각 20만 달러, 화상을 6만 7000달러로 환산한 후 생산된 핀토 1250만대에 11달러짜리 장치를 부착하는 비용을 비교해보니 차라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라는 계산에 따라 행동한 것이죠. 배심원들은 격분했고 일정 손해배상액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리주의적인 경제활동이 합리적일 때가 많지만 이렇게 국가의 대소사나 기업의 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 때로는 인간의 도덕적 정서에 위배되는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필립 모리스와 포드사가 대중들과 배심원들의 분노를 샀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해주지요. 그러나 의본주의에서 경제활동은 ‘의’에 맞는지의 여부를 철저하게 따지는 것이 근본입니다.

경제활동에 있어서 이윤 추구가 근본이 아니라 이치에 합당한 이윤인가가 관건이라는 것이지요. 만약 이치에 합당하다면 아무리 큰 재화를 소유하였더라도 그것은 ‘무소유’입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무소유의 의미와 달라서 당황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특히 최근에 열반에 드신 법정스님에 의해 대부분의 사람들의 뇌리 속에 무소유란 ‘소유욕을 버리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니, 소유한 것에 집착을 버려 마음의 번뇌를 덜어내야 한다는 것이 법정스님이 주장한 무소유의 핵심이었으니까요.이러한 주장은 고상하고 꽤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소유하지 않고서는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유욕 자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소유한 것, 또는 하고 싶은 것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소유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면 소유해도 소유한 것이 아닙니다.

가진 재물의 양에 따라 행복이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죠. 의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경제활동도 그런 의식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볼까요? 이치에 맞는 소유는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소유욕은 더 키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을 공욕이라고 합니다.

반면 자신의 분수에 지나친 재화나, 노력에 합당하지 않은 불의(不義)한 재화를 바라는 것은 사욕에 해당됩니다.

의본주의의 경제활동은 공욕을 통한 재화를 축적하는 활동이며,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무소유입니다.

공욕을 통한 부의 축적은 정당한 노력에 의한 대가이기 때문이지요. 또한 부의 목적이 축적된 부를 의에 맞는 일에 사용하기 위한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부의 축적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것이죠.이러한 마음으로 경제활동을 하면 사람들은 서로 돈을 많이 벌려고 하면서도 남이 정당하게 벌어들인 돈을 부당하게 갈취하거나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고 횡포를 부리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부의 축적은 정당한 노력의 결과이기에 부자가 존경받는 사회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빈부격차에 의한 상대적 박탈감도 약화되겠지요. 사실 지금 현대사회의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양극화 문제는 비단 오늘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과거에는 더 심했다고 할 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문제는 상대적 박탈감입니다.

동등한 인류라면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은 널리 퍼졌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돈에 의해 제한되는 일이 많기에 위화감이 심화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행복의 척도를 재물의 크기로 재단하는 대신 의에 부합하는가를 우선시하고 분수에 합당하다면 만족할 줄 아는 의본주의 사상은 소외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 다음호에 이어서 -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