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형태의 담장 혼재 마을터 좋아 부자가 많아 김안균-조해영-이배원 등 3부자집 세월 흔적 남아

▲ 익산 함라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마을 전체를 휘감아 도는 담장이 눈에 띈다
▲ 조선말 양반가옥인 김안균, 조해영, 이배원 등 이른바 함라마을 3부자집이 세월의 흔적을 버텨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위 사진은 조해영 가옥

익산 함라마을은 담장으로 유명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마을 전체를 휘감아 도는 담장이 눈에 띈다.

등록문화재 제263호인 옛 담장은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토담, 돌담, 전돌을 사용한 화초담 등 다양한 형태의 담이 1,500m에 혼재해 있다.

가을 햇빛을 받으며 돌담길을 거닐다 보면 정든 고향마을길처럼 푸근하고 따뜻함이 절로 느껴진다.

함라마을은 마을 뒤 함라산에서 지명을 가져왔으며 산과 물이 풍요로운 마을로 알려져 있다.

인근엔 비옥한 전답이 마을을 둘러쌓고 있으며, 마을 중심엔 개천이 흘렀다고 전해진다.

마을 터가 좋아 부자들이 많이 살았던 함라마을엔 아직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조선말 양반가옥인 김안균, 조해영, 이배원 등 이른바 함라마을 3부자집이 세월의 흔적을 버텨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3부자 집 중 유일하게 내부까지 접근이 가능한 조해영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 변형된 문간채를 살펴볼 수 있다.

건축 연대는 안채 1918년, 별채 1922년 또는 그 이전으로 추정된다.

안채와 별채는 둘 다 남북으로 길게 평행이고, 안채는 남쪽을 별채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본래 안채를 비롯해 여러 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전체 건물의 일부만 남아 있다.

건축 당시 상류층 가옥의 면모를 일면이나마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전북 문화재자료 제121호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다.

넓은 대지에 웅장하게 새워진 가옥이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는 점이다.

과거 수많은 하인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발길로 북적거렸던 것을 생각하면 그 영광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셈이 됐다.

인근엔 전북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김안균 가옥이 있다.

1920~30년대 지어진 것으로 당시 우리나라 전통적 상류가옥의 변모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및 행랑채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상량문 기록으로 보아 안채와 사랑채는 1922년, 서행랑채는 1930년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말기 양본가옥 형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면서 구조와 의장 등은 일본식 기법이 가미돼 당시의 주택모양을 살필 수 있다.

관리가 되지 않아 거의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인 조해영 가옥에 비하면 김안균 가옥은 상태가 좋은 편이다.

하지만 집 주인이 외지에 거주하는 탓에 평소에는 출입금지다.

멀리서 찾아갔건만 내부를 살피지 못한 아쉬움에 발길을 돌리는 관광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전북도 민속자료 제23호로 지정된 만큼 일반인들에게 개방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은 이배원 가옥이다.

현재 원불교 함라교당으로 사용되는 이 가옥은 현재 사랑채와 안채만 남아 있다.

그 규모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예전에는 곳간에 엽전이 가득했다고 하니 이 집안의 부와 권세를 엿볼 수 있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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