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삼국유사 기록 남아 조선 1,600년경까지 사찰 가능 신라-일본 고대문화형성 기여

▲ 익산 미륵사지 석탑
▲ 2009년 서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백제 왕실의 안녕을 위해 만든 사리장엄이 발견되었다.

지난 7월 미륵사지가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백제역사지구가 등재된 것이다.

백제역사지구는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을 비롯해 총8곳이 포함돼 있다.

미륵사는 백제 시대 가장 큰 사찰로 창건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와 금제사리봉안기에 기록돼 있다.

삼국유사를 보면 왕위에 오른 서동이 왕비 선화와 함께 현재 미륵산인 용화산에 이르자 물속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났다.

선화 공주의 간청으로 연못을 메워 탑과 불전을 세우게 됐고 사찰 이름을 미륵사라 칭했다.

미륵사는 조선중기인 1,600년경까지 사찰의 기능을 이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현재는 크게 훼손된 서탑과 당간지주만 남아 있다.

하지만 계속된 발굴작업을 통해 미륵사는 독특한 가람 배치 외에 석탑의 건립, 금당 기단의 공간 구조, 석등의 조성을 통해 백제 문화의 독창성을 최대로 발휘한 건축문화의 정점을 보여준다.

나아가 미륵사지가 보여준 백제문화는 신라나 일본의 고대문화형성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미륵사지는 국보 제11호인 석탑과 보물 제236호 당간지주, 보물 제1753호 금동향로 등 중요 문화재가 남아 있다.

서탑은 현재 복원을 위해 해체된 상태며, 사라졌던 동탑은 지난 1992년 복원이 됐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에 앞서 미륵사지가 세간의 이목을 끈 것은 지난 2009년이다.

서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백제 왕실의 안녕을 위해 만든 사리장엄이 발견된 것이다.

보물격인 금제사리호를 비롯해 여러 유물이 발견됐지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금제사리봉안기다.

가로 15.5cm, 세로 10.5cm 크기 금판에 음각된 사리봉안기에는 639년 당시 백제 왕후가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익히 알려졌던 서동왕자와 선화공주 이야기는 사라지고 미륵사를 만든 사람으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당시 학계를 비롯해 대한민국 전체가 떠들썩했고, 선화공주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한낱 거짓말이 된 셈이다.

때문에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야기는 서동요는 창작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고, 미륵사의 비밀이 1,370년만에 그 베일을 벗은 셈이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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