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와 과거 교차··· 격랑의 세월 속 노부부의 절절한 사랑이야기 그려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는 박범신이 마흔 두 번째 장편소설 ‘당신’을 들고 독자들을 찾아왔다.

지난 2월부터 7월까지 문학동네 네이버카페에 ‘꽃잎보다 붉던―당신, 먼 시간 속 풍경들’이라는 제목으로 일일 연재했던 작품이다.

책은 2015년, 일흔여덟 살의 주인공 윤희옥이 이제 막 죽어 경직이 시작된 남편을 집 마당에 남몰래 묻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일을 마친 윤희옥은 경찰서를 찾아 남편이 실종되었다고 신고한다.

‘그녀는 왜 사망 신고가 아닌 실종 신고를 택했을까?’ 하는 의문점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윤희옥은 혁명을 꿈꾸었던 김가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의 아이까지 갖게 되었지만 그가 감옥으로 붙잡혀 들어가자 갈 곳이 없어진다.

그녀는 만삭의 몸을 이끌고 그녀를 짝사랑하던 주호백을 찾아간다.

인내와 헌신으로 시종하는 주호백의 삶과 사랑이지만 윤희옥은 그를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녀의 사랑은 김가인뿐이다.

모든 것을 담아두고, 헌신하던 주호백의 삶은 2009년 치매를 겪게 되며 서서히 달라진다.

치매로 인해 그는 그동안 결코 밝히지 않았던 가슴 속의 응어리를 자신도 모르게 내뱉고, 표출한다.

힘겨운 일이지만 윤희옥은 그런 남편의 모습이 오히려 고맙다.

또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불같은 사랑의 감정까지 느낀다.

윤희옥은 과거를 더듬는 남편에 의해, 실종된 아버지를 찾는 딸에 의해 자연스럽게 과거에 소환된다.

‘많은 기억들이 와그르르. 사방에서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잊은 줄 알았던, 한사코 잊고 싶었기 때문에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었다.

(중략) 어떤 삽화는 골짜기 속 깊은 자궁에서 신생아처럼 빠져나오고, 어떤 장면은 괄괄하게 둘러쳐진 암릉에 부딪쳤다가 튕겨나오고, 또 어떤 기억들은 먼바다 부드레한 허리춤에서 화인火印처럼 솟아나왔다.

하나하나 마주보기 두려운 기억들이었다.

’(p.133)소설은 2015년 시점에서 끊임없이 과거를 소환하고, 현재에서 과거로 교차되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6·25전쟁, 4·19혁명, 1972년 유신헌법 공포, 5·18민주화운동, 1993년 문민정부 출범까지 사회적 격랑은 그들의 인생을 뒤흔든다.

처음 노년부부의 사랑이야기가 뭐 그리 낭만적이겠나, 재미가 있겠나 싶었는데 책을 읽을수록 인물 하나하나에 몰입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당시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부부의 마음뿐인가. 딸을 통해 부녀의 사랑까지도 파고든다.

작가는 책 서문 작가의 말을 대신해 넣은 헌사에 이렇게 적었다.

‘사랑의 지속을 믿지 않는 남자 곁에서 그것의 영원성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오랜 당신, 독자들에게 진솔하게 허락을 구하면서, 나이 일흔에 쓴 이 소설을 부끄럽지만 나의 당신에게 주느니, 부디 순하고 기쁘게 받아주길!’ 1946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원광대 국문과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작가 박범신은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9년 장편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등을 발표하고 작품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70~8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그의 작품은 영화화도 많이 됐는데 대표적으로 ‘은교’가 있으며, 최근 ‘고산자’를 원작으로 한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내년 개봉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윤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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