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이 넘은 가장, 섬세한 표현으로 이 시대 청년들의 고민 작품에 풀어내

소설가 황석영(72)이 ‘여울물 소리’ 이후 3년 만에 장편 소설 ‘해질 무렵’을 내놨다.

신작을 내놓고 이뤄진 한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황석영은 “일흔 넘은 내가 보기에도 ‘헬조선’이라는 말에 십분 동의한다.

세상이 별로 달라질 전망이 안 보이니까 쓸쓸하다”고 말했다.

작가의 인터뷰 속 말은 책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해질 무렵’이라는 제목을 통해 언 뜻 드는 느낌은 인생 말년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일흔이 넘은 작가는 이 시대의 청년을 말한다.

성공한 건축가 박민우는 강연장에 찾아온 낯선 여자가 건넨 쪽지 속에서 잊고 지냈던 첫사랑의 이름을 발견한다.

어느덧 옛사랑이 되어버린 이름, ‘차순아’. 그녀는 첫 통화 이후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고, 그저 메일로만 소식을 전해온다.

그리고 그 메일 안에는 어린 시절 그녀와 함께 보낸 산동네의 풍경,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던 마음의 풍경이 비쳐 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견고하게만 보이던 그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연극연출가 정우희는 반 지하 단칸방에서 산다.

음식점 알바와 편의점 알바를 뛰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연극무대에 매달리는 정우희는 한때 연인처럼, 오누이처럼 지내던 남자 김민우의 어머니 차순아와 가까워진다.

김민우가 스스로 생을 놓아버린 이후 불과 몇 달 뒤에 차순아 또한 서둘러 아들을 뒤쫓아 가듯 홀로 죽음을 맞고, 정우희는 그녀가 남기고 떠난 수기들을 챙긴다.

잘 살아냈다고, 잘 견뎌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갔을 수기 속에는 젊은 시절 차순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수기 속에는 그녀의 마음이 한결같이 가리키던 이름 하나가 있다.

‘박민우’. 그는 어떤 사람일까. 정우희는 박민우의 강연장으로 찾아가 이제는 옛사랑이 되어버린, 한때는 마음 떨게 만들었던 첫사랑을 일깨우는 쪽지를 건넨다.

박민우는 1960년대 살았던 자신의 비참하고 가난했던 모습을 떠올리고, 정우희는 현재의 모습을 말하지만 두 사람이 말하는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아 더욱 서글프다.

작가의 말을 통해 황석영은 “개인의 회한과 사회의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기지만, 겪을 때에는 그것이 원래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지난 세대의 과거는 업보가 되어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루었다.

어려운 시절이 오면서 우리는 진작부터 되돌아보아야 했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이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중장년들에게 살아왔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게 하고, 청년들은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생각하게끔 한다.

독자들이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에 쉽게 동화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금 우리 시대가 당면하고 있는 고민들을 작가는 풀어내고 있다.

/윤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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