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행정가서 이제는 군수로 고향위해 제2의 삶 화산 산골출신으로 가난에 한숨짓는 부친보며 잘사는 사회만들자 꿈꿔 관사 까페로 개방 편안함대신 따뜻함 선택

▲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군정을 이끄는, 언제나 주민들에게 진정으로 다가서고 싶다라고 말하는 박성일 군수./김현표기자

오후 1시반.
우산을 받쳐 들고 완주군청을 둘러보고 있자니, 추적추적 빗방울이 우산을 친다.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 탓에 비를 피하려 들어간 곳은 우연찮게도 작은 갤러리형 카페였다.
마침 인터뷰 약속도 30분 뒤인 터라 잘됐다 싶다.
찬 바람이 제법 내리치는 빗방울을 창 너머로 보고 있자니, 곧 만날 이도 따뜻한 이 공간과 닮았단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작은 키에 다부진 입술과 자신감. 그리고, 사람냄새 나는 단체장.

 

“어서 와요. 얼마만이야.”

11월 25일 오후 2시. 군수실에 들어서는 순간, 반갑게 맞아주는 박성일 완주군수(60)의 악수하던 손은, 밝게 웃어주던 얼굴만큼이나 따뜻했다.

박 군수와 전북중앙신문과의 인연이 오래된 탓인지 만남이 어색하지 않았다.

기자가 들렸던 갤러리 형 카페는 군수 관사를 개조해 만든 주민들 휴식공간이란 설명에, 깜짝 놀랐다.

군수가 살아야 할 집을 주민들에게 내놓은 그의 마음가짐 때문이다.

누릴 수 있는 편안함을 포기하고, 나눌 줄 아는 따뜻한 리더십을 가진 단체장은 흔치 않다.

돌이켜보면 박 군수는 단체장 선출 이전, 공직생활 때부터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완주 화산 출신인 그는 6학년 전체가 150명도 안 되는 자그만 산골출신 소년이었다.

전주로 유학을 나와 남중과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1978년 전북대학교 법학과 졸업과 동시에, 23회 행정고시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야당 텃밭에서 무소속 군수에 당선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화려한 학력은 없지만, 한결 같은 노력과 부지런함으로 행정 안전부와 전북도 등에서 요직을 거쳤다.

이후 30여 년 몸담던 공직에서 명예 퇴직한 뒤 지난해 완주군수에 처음 도전해 당선됐다.

박 군수의 승승장구는 단순히 관운이 좋다는 말로는 풀어낼 수 없다.

특유의 부지런함과 친화력, 따뜻한 리더십을 알아야 이해가 가능하다.

그가 행정직을 수행할 때 나온 공식, 비공식 프로필의 키워드도 ‘강직하고 사심이 없다’, ‘진중하다’, ‘기획에 밝다’, ‘성실하다’, ‘따뜻하다’,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다’ 등이다.

군정을 이끌기 위한 이념만 보더라도 그의 따뜻한 리더십을 금새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군수 방 한 켠에 걸려있는 군정 지표와 ‘군정방침 5계명’이다.

다함께 열어가는 으뜸도시 완주를 지표삼아 △ 일자리 창출하는 상생경제 △ 차별과 소외 없는 맞춤복지 △ 누구나 향유하는 문화체육 △ 미래를 선도하는 창조교육 △ 소통과 공감으로 위민행정 등이다.

이 군정방침의 원전(原典)은 그가 초등학생 어린 시절부터 살아왔던 고향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가짐’이다.

군수 당선이 확정됐던 날 저녁, 누구보다 들떠있었어야 했지만 그는 “이런저런 고민에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뒤척거리다 날을 새버렸다”고 말한다.

밤 새 “고향을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 실행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했다.

그의 눈빛에서 당시의 ‘진심’이 그대로 느껴졌다.

박 군수 특유의 온화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투도 옛날 전북도 행정부지사 시절 그대로였다.

“직접 군정을 운영하는 게 어떠시냐”고 묻자 “의미 있는 일들이 많아 좋기도 하지만, 결정 하나로 인한 파급력을 생각해 볼 때, 사람을 더욱 진중케 하는 자리다”며 웃었다.

행정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볼 때, 행정 부지사와 군수라는 자리가 별단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말에 “30년을 공직자라는 이름으로 살았고, 이제는 군수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조력자로 일했던 때도 행복했지만, 고향에서 군수라는 이름으로 정책결정을 고민하는 이 시간 또한 행복하다”고 현재의 심경을 밝혔다.

박 군수의 이력만 보면, 그는 비교적 무난한 행보를 이어왔다.

하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굴곡의 인생역정을 보냈다.

그 연배라면 대체로 겪었을 어린 시절의 가난을 어렵게 극복하고 맏아들로써, 행정가로, 또 정치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마다 도전과 집념이 함께 새겨져 있다.

 

◇ 가난에 짓눌렸던 학창시절 박성일 완주군수는 1955년 3월 13일 완주군 화산면에서 면서기장을 지내시던 아버지 박효식씨의 2남4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어린 박성일은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부모님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던 공부는 늘 1등이었고, 6학년 졸업 때, 화산초등학교 교육장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늘 가난에 짓눌렸고 이로 인해 한눈을 판다는 건 생각조차 못했다.

박 군수는 회고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네 살 많던 삼촌도 고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박 군수와 삼촌의 등록금과 유학비 마련은 역부족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중학교는 보내줄 수 있지만, 고등학교는 성적을 본 뒤에 결정하자. 전주고등학교에 합격한 사람만 등록금을 지원해 주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고, 어려서부터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매우 잘했던 삼촌은 안타깝게 전주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졌다.

이후 삼촌은 아버지와 약속했던 대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로 직장을 찾아 나갔고, 박 군수는 훗날 전북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까지 마쳤다.

삼촌이 서울로 직장을 찾아 떠나던 날, 밤새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던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본 그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가족들이 서로에게 미안해하지 않는 그런 사회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가슴에 새겼다.

돈이 없어 꿈을 접어야 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지역발전에 헌신하겠다는 마음도 다지게 됐다.

공직 선배와 학창 시절의 은사 등 많은 멘토들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그러나 인생의 최고 멘토는 ‘주민’이다. 행안부 공무원시절, 공무원 면접 때마다 박 군수가 하는 질문이 있다.

“공무원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시대에 따라 대답도 조금씩 달랐지만 ‘국민’이라고 말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공무원을 꿈꾼다면 그에 앞서 생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박 군수 만의 소신 때문이었다.

 

◇ 30년 만에 두 번째 선택, 사람냄새 나는 따뜻한 군수로 지난해 7월 취임한 박 군수는 주민과 함께 호홉하고 소통하며, 더 큰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고자 앞만 보고 달려왔다.

주민 소득과 삶의 질이 크게 높아질 수 있도록 5대 군정방침을 구체화하고, 일자리, 농업농촌, 삶의 질 향상 등 3대 핵심정책을 가시화함으로써, '더 잘사는 완주' 건설을 위한 초석도 만들었다.

취임 첫 업무로 완주-전주 시내버스 요금단일화 시행계획을 결재한 박성일 완주군수의 행보는 올해 본격 시행되면서 결실을 맺었고, 500원 마을 으뜸택시와 장애인 콜택시, 안심택시 등은 완주군을 ‘교통복지 1번지’로 자리잡게 했다.

또한 권위주의의 상징이었던 군수 관사를 군민들에게 개방해 주민 힐링과 소통공간인 완주 웰컴센터로 조성해 개방했다.

군민정책 아이디어 공모전도 개최하고, 민선6기 공약에 주민배심원제 운영 등 주민을 주인공으로 섬기는 소통과 화합의 위민행정을 구현했다.

완주 지역예술문화의 총 본산인 완주예총을 창립해 완주군 문화예술 위상제고와 완주군의 자존심을 세우는데도 힘을 기울였다.

‘월급받는 군민, 더 잘사는 완주’를 위해 기업과 공공일자리, 주민참여형 일자리 등 다양한 일자리 창출에 역점을 뒀고, 테크노밸리 조성사업도 순항 중이다.

로컬푸드 직매장 확대로 농가소득 증대와 함께 소농·고령농과 기업농·전업농의 상생과 시장 경쟁력을 갖춘 농업생태계를 만드는 완주농업 융성 프로젝트도 성과를 내고 있다.

소외 없는 복지를 위해 종합복지계획을 수립하고, 행복 최저기준선 정립과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사업도 활성화 시켰다.

여성이 살기좋은 여성행복 실현을 위한 369 보육프로젝트와 아동친화도시 조성을 필두로 한 수요자 중심의 선제적 복지서비스도 제공, 맞춤복지에 중점 주력하고 있다.

누구나 향유하는 문화체육을 활성화 하고, 군민의 삶의 질 높이기에도 본격 착수했다.

문화예술의 전문성을 위한 완주 문화재단 설립과 삼례 문화예술촌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관광 스타 브랜드를 육성 중이다.

근로자종합복지관, 문화공연장, 작은영화관 건립을 통한 문화복지 실현도 추진되고 있다.

교육 걱정 제로 프로젝트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재육성재단과 인재개발관 운영으로 미래를 키우는 과감한 교육투자를 실현하는 동시에, 교육중간 조직인 통합지원센터 운영으로 글로벌 인재양성에 나서고 있다.

농촌형 거점중학교 육성과 교육청을 연계한 교육특구도 활성화해 교육의 질을 높여가고 있다.

소통공감을 위해 ‘완주군민의 날’을 ‘상생 화합의 날’로 축제화하고, ‘군민상생공원 건립’ 등을 통해 상생과 화합도 유도하고 있다.

도시공동체 활성화를 통한 군민 행복 체감도를 높이기 위해 완주 르네상스도 추진, 박 군수의 제1의 정책 브랜드인 ‘소통’을 정착화 시켰다.

장기간 표류해왔던 삼봉신도시 사업 재개도 이끌어낸 박 군수는 “삼봉신도시는 완주군의 외형과 위상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현안”이라며 “미래를 내다보고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도시계획을 통해 외부에서도 완주군으로 들어와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더디가더라도 주민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서고 싶다는 박 군수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군정을 이끄는 군수로 남고싶다”는 속내도 내비쳤다.

아직도 표정이 해맑아 어떻게 보면,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행정가다운 모습이 더 짙은 박 군수는 내년에도 완주군에 따뜻한 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채비에 마음이 바빠 보였다.

 

/박정미기자 jun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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