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철원작가 소설'왕의초상' ···치밀한 고증 조선 초 격동의 역사 속 복수-사랑 그려

“조선은 저 높고 아름다운 나라, 고려를 피로 물들이며 일으킨 나라이옵니다, 고려유민들을 척살하며 그 높음과 아름다움이 모두로부터 사라질 것이옵니다.”

9쪽여말선초, 고려유민들은 공안정국에 저항하며 목숨을 잃어간다.

태종 이방원의 신임을 받던 도화서 화원 명현서도 조선을 반역하고 고려유민을 도왔다는 의심을 받고 태종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명현서의 딸, 명무는 간신히 살아남아 아비의 스승과 몸을 피한다.

6년 후, 태종어진을 그리기 위한 경연이 열리고 조정은 화가들을 경복궁으로 불러 모은다.

명무도 붓과 칼을 들고 궁궐로 향한다.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최종 어진에 선택되어야 한다.

왕의 얼굴과 정신을 담는 숭엄한 경연장은 각기 다른 신념과 복수를 품은 자들로 숨 막히는 전운이 감돈다.

어진경연도 막바지에 접어들어, 어진화사들이 최종적으로 자신의 그림이 선택되길 기다리고 있을 때, 한 어진화사가 죽임을 당하고 그 현장에서 명무의 붓이 발견된다.

그리고 한 폭의 어진에 숨어 있는 반역의 증거가 나타난다.

궁궐은 걷잡을 수 없는 분위기에 휩싸인다.

과연, 명무는 어진화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왕을 독대할 수 있을 것인가…….‘왕의 초상’은 고려유민을 죽여야 명분을 얻을 수 있는 조선의 왕 태종, 복수를 하기 위해 사랑을 해야 하는 고려 여인 명무. 그리고 명무의 아비에게 칼을 휘두른 남자, 예문관 대교. 이들의 운명은 서로 엇갈리며 숨 막히는 반전을 반복한다.

작가는 서로 다른 왕조에 충성하는 사람들,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조선 초, 격동기의 역사 속에서 정교하게 복원한다.

서철원 작가는 지난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문화기획의 시각을 대중적인 관점에 접목시켜 국내 스토리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작가는 2015년부터 전업작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오는 2월 전북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다.

가족을 테마로 한 9인 소설집 ‘두 번 결혼할 법’(예옥, 2015), 장편소설 ‘왕의 초상’(다산북스, 2015)을 발표했다.

그 외 ‘그들만의 전설’, ‘호모 아나키스트’, ‘빙어’, ‘겨울, 1975’, ‘가을의 후예’, ‘추림(秋霖)’, ‘칼새’, ‘고놈, 산갈치’, ‘여우비’, ‘가야무사 : 운봉고원의 칼’, ‘장헌(莊獻)’ 등 다수의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작가는 이번 소설에 대해 “조선왕조실록 해제(解題)에서 문체적 영향을 받았다, 편년체 일기에는 왕과 시중들이 사실적으로 주고받은 말들이 담겨 있고, 그 하염없는 인문학적 수사와 사유를 공감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 소설이 실록에 대한 문학적 오마주임을 밝혔다.

‘왕의 초상’은 존재 하지 않은 태종어진을 소재로 삼았음에도, 모든 풍경과 이야기, 어진 제작과정 바로 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탄탄한 이야기는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고 묵직하게 나아간다.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는 추천의 말을 통해 “임금의 초상화를 그려나가는 어진(御眞) 제작 과정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치밀한 묘사,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문체로 역사 스릴러의 재미를 제대로 빚어냈다” 며 “왕과 사대부 혹은 장군들의 역사 밑에 도도한 저류로 흐르고 있는 예인과 기인, 협객의 호쾌하면서도 담백한 사연들이 한국 역사 소설에 이채로운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고 평가했다.

/윤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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