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의회 최은희 의원  

영미시를 대표하는 윌리엄 블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라고 했다.

모래 한 알에도 우주가 담겨 있다는 그의 역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생각해 보라.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본다면 당신의 눈동자에도 우주가 담겨 있는 것이고, 당신의 뜨거운 심장은 우주 그 자체가 아닌가. 그렇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우주의 중심인 동시에 일부라는 영감을 잃지 않고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한다.

스스로를 성찰하면서 ‘손 안에 무한을 거머쥐는’ 주체성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삶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블레이크가 말한 한 알의 모래를 공무원에게 적용해보자. 공무원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의 일원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하지만 스스로 이러한 권한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에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데 이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경직된 위계사회인만큼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면서 푸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푸념에 갇힌다면 손에 무한을 거머쥐기는커녕 모래 한 알도 제대로 쥐기 어렵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조그만 집단과 마을에 변화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축적된다면 우리 사회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공무원 한 명의 정성과 열정에는 이미 세상의 변화가 담겨 있는 것이다.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한 때 마을만들기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던 모 지자체가 성공사례로 부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열정적인 공무원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한다.

그것도 스스로 전문성을 배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불이익을 감수하며 동일 업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했다.

스스로 사업의 성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그 확신을 실천으로 보여줄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별 수 없다’는 푸념 속에 스스로를 매몰시키는 게 아니라 그 푸념을 넘어서는 열정과,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손 안에 무한을 거머쥐려는 주체적인 자기인식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필자는 얼마 전 전라북도 재난관리기금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발의한 바 있다.

재난발생 시 강제대피조치를 당하는 주민에게 지원하는 주택임차비용 폭을 확대하는 것이 개정의 핵심이었다.

재난이 발생하고 강제대피조치를 이행하는 주민은 새로운 거처를 찾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의 피해자다.

그리고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있는 사람보다는 없는 사람이 강제대피조치를 이행하게 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주택임차 소요비용의 70%와 3천만원이라는 융자한도액 범위에서 지원해준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또한 조례가 아닌 시행규칙에는 융자이율이 연리 3~5%의 변동금리를 적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역시 시중금리보다 높은 이율이다.

상식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지원’ 규정인 것이다.

그런데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규정은 어떻게 해서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던 걸까. 여기에는 일차적으로 담당 공무원들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의회의 역할도 이런 점을 찾아내는 것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해당 사안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고 자치법규를 이행해야 하는 주체는 행정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부서장이 바뀌면 소관 조례를 검토하고 개정할 사항은 없는지, 사문화된 것은 없는지 등을 면밀하게 볼 텐데 이런 검토과정이 생략되었거나 대충 이루어졌을 것이다.

물론, 이들이 자치법규를 시행하는 주체로서 보다 나은 방향을 고민하고, 재난피해를 입은 당사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의회나 언론에서 지적하지 않고 그저 무난하게 지나가면 더 이상 고민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는 공무원 한 명에게 주어진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공무원의 열정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민원인 한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 그리고 그 친절로 인해 해당 민원인이 혜택을 본다면 이 역시 세상을 바꾸는 실천의 한 부분이다.

담당자로서 끊임없이 전문가 집단이나 주민들과 소통하고, 동료직원과 상관을 옳은 방향으로 설득시키면서 열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가는 것도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조례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개정할 부분을 발굴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비약일까. 그렇다면 모래 한 알에서 우주를 보고, 손 안에 무한을 거머쥐라는 블레이크의 역설 또한 비약이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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