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원

/전북도체육회 사무처장

전북이 배출한 정계 거목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가 노환으로 향년 94세에 별세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제12대 의원까지 7선을 한 야권 지도자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정계를 이끌었던 분이다.

하지만 전북도민들 대부분은 고 이철승 대표가 체육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소석 선생은 1961년 제18대 대한체육회장을 지냈다.

당시 체육회 역사상 처음으로 경선을 통해 체육회장이 됐고, 불과 40세로 ‘최연소 대한체육회장’이란 기록을 가지고 있다.

작년에 대한체육회 신년 인사회 때 태릉선수촌에서 후배들에게 덕담으로 ‘체육입국’이란 말씀을 하셨다.

“체육인이 이 나라를 세웠고, 체육인이 살렸다. 정치와 체육은 별개 분야라지만 사실 체육은 모든 인간 활동의 기본이다. 내 근본, 내 본령이 체육인이고 난 스포츠맨이다”고 말씀하신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역대 대한체육회장은 1920년 제1대 장두현 회장부터 현 제38대 김정행 회장까지 지난 95년간 모두 33명이다.

특히 이철승 회장은 취임 5개월 만에 5·16쿠테타를 맞아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철승 회장은 10대 때부터 지난 80년간 뛰고(육상), 차고(축구), 던지고(농구), 치고(테니스, 골프), 헤엄 치고(수영), 들었다 놨다(역기)를 계속하신 만능 스포츠인으로, 전주 고보 (현 전주고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운동을 하시면서 정치를 하셨다고 한다.

특히 원로체육인들에 의하면 김성집(역도), 서윤복(마라톤), 서윤복(마라톤), 이효창(빙속), 신동의(레슬링) 등의 선수가 해외 출전 시에는 든든한 후원자의 역할을 하셔서 체육인들에게 칭송이 자자했다고 들었다.

또한 대한역도연맹회장도 역임에 제50회 전국체전에 전라북도 대표팀 테니스 장년부로 출전해 기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특히 체전출전을 계기로 1970년대 이후 전북 남원이 ‘한국 테니스의 고향’이 된 것은 소석 선생의 공헌이 크다.

소석 선생은 지금까지는 부드러운 연식정구를 ‘이제 딱딱한 걸로 바꿔라’ 하면서 테니스를 고향 남원 선수들에게 전수했고, 자비를 들여 테니스 공, 라켓 등을 구입해 테니스를 활성화 시켰고, 오늘의 김문일, 이덕희, 이순오 등의 남원출신 국가대표 테니스 간판들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7선 의원의 정치인으로서는 누구나 알겠지만 체육인 이철승 회장은 생소 할 것 이다.

또한 소석 선생은 이름 난 반공주의 보수주의자이지만 한때는 이평(二平)론자다.

첫째 ‘평’ 은 2018년 평(平)창 동계올림픽을 꼭 보자는 것이고, 둘째 ‘평’ 은 평(平)양 가서 냉면을 먹자는 것이었지만 이것을 실천하지 못하게 돼 후배 체육인들에게 아쉬움을 더해 주시고 있다.

또한 회장님은 서울 평화상 문화재단 이사장, 2002년 월드컵 조직위원회 위원도 지냈다.

평소 고향발전에 대한 애정이 많아 재경도민회 고문으로도 열정적인 활동을 하셨다.

지난해 현대모터스 축구단이 K리그 우승을 했을 때에 금일봉의 격려금을 전달해 주셔서 선수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할 정도였다.

고향 사랑이 많으신 영원한 체육인 소석 이철승 회장님께서 이제 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후배 체육인들은 고인의 영원한 체육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면서 영전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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