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찬

/전주교육대학교 전 총장

필자는 고덕산 아래에서 살고 있어, 매일 매일 바라다보는 눈에 익고, 친근한 산이다.

고덕산에 9번이나 올랐지만 오를 때마다 항상 새로움을 느끼게 하고, 3월까지 잔설이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제자들과 오후에 좁은목 약수터 위쪽으로 등산로를 따라 고덕산에 오르기로 했다.

처음부터 가파른 코스가 시작되어 제자가 좀 힘이 드는 것 같이 보여, 잠깐씩 쉬었다가 또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다.

구두를 신고 와서 더욱 힘이 드는 것 같이 보였다.

필자가 장갑을 벗어 주면서 사용하라고 했더니 고마운 모양이다.

한참을 올라가 첫 번째 봉우리인 천경대에 도착해 전주시내와 전주교육대학교를 내려다보면서 모두들 흐뭇해 했고, 이 곳부터가 우리대학 교가에 나오는 고달봉 줄기라고 하니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주시내는 6시 방향에서부터 1시 방향까지 시내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12시 방향으로 대둔산(877m)이 눈에 들어오고, 11시 방향으로는 금마 미륵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7시 방향으로는 모악산(793m)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이고, 효자동에 있는 완산칠봉은 한참 밑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10여분 주변 경관을 탐닉하고, 남고산성 성벽을 따라 고덕산 정상으로 향했다.

여기부터는 그래도 처음 오를 때보다는 평탄한 코스다.

서로 담소를 나누며, 간간이 들려오는 명쾌한 새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걸었다.

주위에는 칡넝쿨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다.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간식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친구들과 산에 가서 칡을 캐려고 칡넝쿨을 찾으면 거의 눈에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어느 산이든, 산을 조금만 오르면 칡넝쿨을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간식거리가 풍부해져서 이런 칡 같은 것은 아이들이 캐러 오질 않는 것 같다.

언젠가 산에 오르면서 추억을 살려 칡을 캐려고 야전용 삽을 가지고 올랐는데 칡이 어떻게나 크던지 잘 캐지지가 않았다.

그 다음부터는 필자도 보고 느끼는 데서 멈추기로 했다.

작은 봉우리 몇 개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고덕산을 오르다 보니, 어느 봉 주위에는 아직도 가을처럼 많은 낙엽이 산길을 덮어 우리가 걸을 때마다 발 밑에서 바스락 바스락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새삼 가을의 맛을 자아내게 해 가을과 겨울과 새봄의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푸른 소나무 향과 솔잎의 푸르름은 집에서 바라다보면서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정취를 느끼게 해주어 등산의 묘미를 즐길 수 있었다.

9부 능선쯤 도착했을 때 눈이 얼어붙어, 구두를 신고 온 제자가 힘들어 보여서, 필자가 끌어주고 다른 제자가 뒤에서 밀어주고 하면서 난코스를 천천히 한발 한발 오르기 시작했다.

구두를 신고 온 제자는 오후 3시에 모여서 가까운 산에 갈 것이라고 해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그게 아니라 당황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만날 때는 이런 수준이니까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오라했더니, 두 번 다시 시행착오를 겪지는 않을 거라 다짐했다.

힘겹게 땀을 흘리며 도착한 정상에는 늘 그랬듯이, 헬리콥터가 앉을 표시만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정상에 오르니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정상을 정복한 희열을 느끼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을 보냈다.

왜냐하면,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산하는 길은 낙엽과 돌멩이가 많아 밟으면 죽죽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조심조심 서로서로 손을 잡고 천천히 내려오고, 또 내려왔다.

중간쯤 내려오니 주위는 완전히 깜깜해져서 10m 앞도 보이질 않았다.

옛날에 내려왔던 기억을 더듬어 내려오는데 잠깐 동안 길을 잃기도 했지만, 곧 길을 찾아 내려오다 가시나무인줄 모르고 나무처럼 생겨서 잡았다가 가시에 찔려 피가 나기도 했다.

달빛조차 없어 별빛에 의존하여 주변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

모두들 지쳤다.

한참을 내려오는데 전에 없던 묘지조성이 되었는지, 비석이 마치 사람이 서있는 것처럼 보여서, 우리 모두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잠시 후 비석임을 확인하고는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조금 더 내려오니 인가의 불빛이 보였다.

모두들 ‘살았구나!’ 하는 마음으로 평온을 되찾았다.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

개 짖는 소리도 들린다.

처음 만난 마을은 별장처럼 잘 지은 집이 단층, 2층으로 여러 채가 자연의 품에서 동식물을 벗 삼아 살기에 좋게끔 조성돼 있었다.

전주시내에서 20여분 떨어진 거리에 산이 있고, 저수지가 있는 풍광 좋은 마을이었다.

영화 속에 나오는 그런 동네처럼 꾸며져 있었다.

이제 배고품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산에 오르기 시작한 지도 어느새 4시간이 넘어, 현재 밤 7시가 넘었으니 말이다.

‘어두리’ 저수지 밑에 있는 음식점으로 가서 ‘오리주물럭’으로 시장기와 긴장감을 풀고 나니, 자연에서 느꼈던 느낌들이 고스란히 우리의 몸에 스며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징어전과 파전은 우리의 회포를 풀기에 충분하였다.

우리 모두 열심히, 즐겁게 먹고 이제는 행복해하는 분위기이다.

자연과 함께한 시간이 힘은 들었지만 이제 모두 눈 녹듯 사라지고, 멋지고, 맛있고, 즐거운 만찬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행복감은 우리를 자꾸 이면세계로 인도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 자리를 일어서기로 했다.

오늘 등산은 한밤중까지 계속된 추억에 남을 등산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밤에 눈이 내려 어제 우리가 올랐던 고덕산 정상이 하얀 옷으로 깨끗이 갈아입었다.

우리가 자연보호를 제대로 해 자연을 자연의 품으로 되돌려준 느낌이다.

소리 없이 내리는 깨끗하고 순결한 눈은 오늘도 계속 내린다.

제자들과 함께 자연의 품에 안기어 보낸 시간은, 보약을 먹은 것 보다 건강에 좋고, 심신을 말끔히 정화 시켜준 유쾌하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 이었다.

커다란 욕심 없이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어울려 보내는 시간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지고 소중하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주변 가까이에서 찾으면, 얼마든지 행복을 느낄만한 요소가 많이 있는데, 그걸 못 찾고, 못 느끼고, 멀리에서만 구하려고 하다 보면 불행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인생을 삶에 있어 마음이 통하는 이런 제자들과 어울려 보내는 시간이 너무너무 소중하여, 큰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가 즐겁고,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런 사람만이 인생의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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