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지
창호지
  • 김완수
  • 승인 2016.03.2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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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남 중 

/건축사 주)라인 종합 건축사 사무소      

지천년 견오백(紙千年 絹五百)이라는 말이 있다.

비단도 수명이 500년에 불과한데 한지는 천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다는 뜻이다.

한국 문화의 생명과 함께 해온 한지를 한마디로 명명할 수 있는 말이다.

‘전주한지’가 우리 민족의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전주사고본 조선왕조실록(614책, 5만3,102면)으로 다시 태어났다.

또한, 조선시대 출판문화의 꽃을 피운 곳으로 완판본의 고장인 전주의 옛 명성을 되살려 외국 국가기록물의 한지 복본화 사업을 펼쳐 한지 세계화 창조경제성장의 표준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한지는 세계 최고여서 중국 황제에 관한 기록은 모두 한지를 썼다고 한다.

그렇기에 지금도 고려시대 책들을 인사동에서 펼쳐볼 수 있으나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성경은, 금년에 한국나들이를 하긴 했지만, 지질 때문에 평소에는 암실에 보관하고 있다 한다.

들기름 먹인 한지는 비닐보다 인장강도가 높고 햇빛 투과율이 45%에 이르기에 선조들은 유럽보다 170년이나 앞서 온실을 만들었다.

한지는 옻칠하여 여러 겹 겹치면 화살도 뚫지 못하는 강함이 있어 갑옷의 일부분으로 사용하였고, 신부의 오줌 누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가마에 넣어두는 요강을 만들기도 하였다.

필자의 어린시절만 하여도 한지로 만들어 썼던 반짇고리 등이 요즈음은 공예로 부활하고, 속옷, 평상복에 파티 옷까지 만들고 있다.

이렇게 한지의 용도가 다양하지만 우리에게 정겹게 다가오는 것은 창호지문이다.

창호지는 미세한 구멍으로 환기와 온습도까지 조절한다.

단열효과도 커서 창호지 이중창은 페어글라스 창보다 열효율이 높다.

그런데도 문바르기를 매년 해야 하는 귀찮을 때문인지 점점 사라지고, 경복궁 내 궁궐도 자원봉사이긴 하나 외국인이 바르기도 하는 현실이다.

또한 요즈음 각광받는 서울 가회동 북촌마을도 내부 개량을 하면서, 문살은 한식인데 창호지 대신 한지로 보이는 이미테이션 플라스틱을 붙이는 집들이 늘고 있다.

"어디서 솰솰 소란히 들려오는 소리 있기에 바람소리인가 했으나, 가만히 들어보면 바람소리도 아니요, 물소린가 했더니 물소리만도 아니요, 나뭇잎 갈리는 소린가 했더니 나뭇잎 갈리는 소리와 함께 어울린 교향악인 듯싶거니와, 어쩌면 곤히 잠든 산의 호흡인지도 모를 일이다. 을 어정어정 거닐다 보니, 여관집 아가씨는 등잔 아래에 외로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무슨 책일까? 밤 깊은 줄 조차 모르고 골똘히 읽는품이, 춘향이 태형 맞으며 백으로 아뢰는 대못인 것도 같고, 누명쓴 장화가 자결을 각오하고 원한을 하늘에 고축하는 대목인 것도 같고, 시베리아로 정배 가는 카추샤의 뒤를 네프백작이 쫓아가는 대목인 것도 같고, 궁금한 판에 제멋대로 상상해 보는 동안에 산속의 밤은 처량히 깊어갔다."

정비석은 금강산 기행문 ‘산정무한’에서 창호지문에 비친 독서하는 아가씨의 그림자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유리창은 실체가 보이고 커튼은 선명치 않다.

가장 선명한 실루엣을 보여주는 창호지문을 통해 보는 다듬이질하는 그림자 영상과 리드미컬한 다듬이소리는 세계인을 매료케 하는 한국의 멋이다.

깊어가는 밤, 영창에 비친 독서하는 그림자가 아름다운 저녁이다.

이 풍진세상 잊고, 잠시 고즈넉한 산사에서 독서삼매에 빠져 봄은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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