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몽고메리 '할머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 그녀의 여정-고난의 삶의 궤적 담담히 풀어내

1955년 5월 어느 봄날, 예순일곱 살의 엠마 게이트우드가 가족들에게 “어디 좀 다녀올게”라는 짤막한 인사를 남기고 길을 나선다.

옷가지와 먹을거리, 반창고 든 자루 하나와 200달러의 여비뿐이었다.

엠마 게이트우드가 떠난 곳은 놀랍게도 캐터딘 산 정상이다.

총 길이 3,300킬로미터에 이르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으며 캐터딘 산 정상을 향했다.

그녀가 마주한 애팔래치아는 만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잘못된 표지판, 방치된 쉼터, 정비되지 않은 길 등 트레일의 상태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고, 밤이면 고슴도치와 같이 잠을 자거나 들개의 기척을 느끼며 뒤척이는 날도 있었다.

침낭도 없이 한뎃잠을 잘 때는 불에 달군 돌을 품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리를 노리는 방울뱀을 지팡이로 내리친 날에는 숨을 몰아쉴 때마다 갈비뼈가 벌렁거렸다.

안경은 부서지고 무릎은 쑤셨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재난의 해로 기록된 1955년의 허리케인은 트레일도 강타했다.

엠마는 15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거센 비바람을 헤치고 비틀대며 걸었다.

엠마는 마침내 길을 떠난 지 146일째 되는 날, 종착지인 캐터딘 산 정상에 다다른다.

그녀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전체를 혼자 걸어서 한 번에 완주한 첫 번째 여성이 되었으며, 남녀 통틀어 이 길을 세 차례나 완주한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엠마가 세상을 떠난 지 43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게이트우드 할머니’, 도보여행자들의 전설 ‘애팔래치아의 여왕’으로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리고 그녀가 체험한 트레일의 이야기는 자칫 잊히고 사라질 위기에 있었던 도보여행 코스를 되살려내는 계기가 됐다.

엠마는 왜 길고 험한 여정을 떠난 것일까?

이 책의 저자인 언론인 벤 몽고메리는 엠마 게이트우드가 남긴 여행 기록과 일기와 편지를 확인하고, 그녀의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트레일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여정과 그녀의 삶을 추적했다.

엠마는 35년 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열한 명의 아이를 키워낸 어머니였다.

그녀의 남편은 지역 사회에서 신망이 두터운 엘리트였으나 집에서는 끔찍한 폭력을 일삼았다.

성적 학대도 서슴지 않았다.

농장을 일구고 살림을 꾸리는 것도 그녀의 몫이었다.

엠마는 홀로 숲으로 가 책을 읽고 길을 걸으며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쉰네 살 되던 해 법정에서 이혼 판결을 받아내 자유를 찾고 아이들도 다 장성한 노년의 어느 날, 애팔래치아를 향해 길을 떠난다.

수없이 쏟아진 ‘왜’냐는 질문에 그녀는 “그렇게 하고 싶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벤 몽고메리의 ‘할머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책세상)는 예순일곱 할머니의 애팔래치아 여정과 그녀의 삶의 궤적을 담담히 풀어낸다.

그녀의 여행은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니라 고난에 대한 저항이며, 고통을 이겨내는 희망이다.

오늘날 트레일을 걷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엠마가 길을 나선 그때로부터 61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마음을 뛰게 하는 것은 ‘애팔래치아의 여왕’이나 ‘도보여행의 전설’ 같은 명성이 아니라, ‘엠마 게이트우드’라는 숭고한 인간의 아름다움이다.

예순일곱 살의 할머니는 오로지 두 발과 강인한 심장, 놀라운 인내력, 지칠 줄 모르는 의지, 희망을 잃지 않은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목표를 성취해냈다.

그리고 그녀의 용기는 전염성이 강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힘이 들면 게이트우드 할머니 생각을 했어요.”

/윤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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