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의 네번째 장편소설 '홀 The Hole' 주인공 '오기'의 섬세한 심리 묘사 긴장감 더해

편혜영 ‘홀 The Hole’  

‘홀 The Hole’(문학과지성사)은 편혜영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로테스크한 디스토피아’를 그린 첫 소설집 ‘아오이가든’을 출간한 이후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 ‘밤이 지나간다’, 장편소설 ‘재와 빨강’ ‘서쪽 숲에 갔다’, ‘선의 법칙’ 등을 출간했다.

작가는 새 작품마다 변화의 지점을 만들어가며 초창기 작품 세계를 넘어서는 밀도 높은 서사와 문장의 긴밀성을 장점으로 한 작품들을 써오면서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그 결과는 수상으로 이어졌는데 이효석문학상(2009), 동인문학상(2012), 이상문학상(2014), 현대문학상(2015)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홀 The Hole’은 단편 ‘식물 애호’에서 시작됐다.

느닷없는 교통사고와 아내의 죽음으로 완전히 달라진 오기의 삶을 큰 줄기로 삼으면서, 장면 사이사이에 내면 심리의 층을 정밀하게 쌓아 올렸다.

또한 모호한 관계의 갈등을 치밀하게 엮어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해냈다.

사고가 일어난 직후 벌어지는 일들과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들이 교차로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한 인간에 대한 적나라한 일면이 서로 단단히 연결된 문장들로 기록됐다.

특별한 일 없이 흐르던 일상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기도 한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재앙과 고난을 기다렸다는 듯이 편혜영은 그 시작을 알리는 방아쇠를 당긴다.

이 책은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사고로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교통사고. 이 사고로 오기는 아내를 잃고, 스스로는 눈을 깜박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가 되어버린다.

의사의 말대로 ‘의지’가 있어야만 겨우 살 수 있는 상태에 처한 셈이다.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는 오기의 독백처럼 예상치 못한 사건은 오기의 일상을 한순간 뒤흔든다.

오기의 신체와 삶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데에 교통사고가 결정적이고도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작가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 오기의 삶을 한 꺼풀씩 벗겨내며, 이미 뚫려 있던 구멍의 실체를 드러낸다.

후배 제이와의 불륜, 경쟁 상대의 약점을 이용해 술수를 부렸던 지난날의 모습이 오기의 기억과 작가의 진술을 통해 서술된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 다른 사람의 의지를 손쉽게 비웃는 그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며 아내에게 ‘성장할 만한 일’을 찾으라 훈계하는 모습 역시 서서히 변해가던 오기를 짐작케 한다.

사고 전후의 모습을 계속해서 교차하며 작가는 오기가 만들어온 그의 삶을 관찰한다.

이는 곧 이 소설이 단순히 ‘사고’로 인한 불행만을 말하려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 책 대부분의 사건과 이야기는 타운하우스 형태로 지어진 오기 부부의 집에서 벌어진다.

정원을 갖춘 이 집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오기와 두 여자 사이의 관계 변화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크지 않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삶에의 불안과 공포가 사건이 진행될수록 서서히 오기를 조여온다.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일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지난날의 삶이 덮쳐오면서 읽는 이들도 함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윤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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