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휴-정제두-홍경래등 용기를 내 시대에 맞서 행동한 22인의 통찰 담아

<조선이 버린 천재들>

역사학자 이덕일  

요즘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역사저널 그날>은 역사적 사건, 인물 등을 주제로 각 패널들이 당시의 상황을 되돌아보고, 자기 나름의 해석을 덧붙인 토론을 이어나간다.

그 프로그램을 보자면 역사적으로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인물이 많다.

청렴결백으로 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 사회를 바라보는 깊은 통찰력을 지녔지만 정치적으로 희생됐던 인물, 공주로 태어나 자신의 의지에 상관없이 정치적 격랑에 휩쓸려 희생돼야 했던 인물 등이다.

<역사저널 그날>은 당시의 인물과 사건들을 재해석해 보는 재미가 있는데 역사학자 이덕일이 펴낸 <조선이 버린 천재들>(옥당) 역시 한국사 인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던진다.

책에서 주목한 인물들은 ‘시대의 질서와 이념에 도전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당대에는 이단아로 배척받았거나 멸문지화를 당했으나 이 시대에도 유효한 의미를 던져주는 역사의 선각자들이자 시대를 앞서 간 천재들이다.

저자는 시대의 벽을 넘어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22명 혁명가들을 불안한 시대를 사는 우리 앞에 불러내 시대를 보는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저자는 “천재란 많은 것을 외우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천재란 대다수 사람이 상식이라고 믿는 개념과 구조에 반기를 들고 싸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반기가 나중에는 주류의 깃발이 된 것이 인류 발전의 역사였다. 지동설이 그랬고 상대성의 원리가 그랬고, 민주주의의 역사가 그랬다”며 그 시대의 논리에 도전하며 앞서 간 선각자야말로 진정한 천재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은 앞서 언급한 혁명가에도 맞닿아 있는 논리다.

변방 국가로서 생존의 빌미였던 맹목적 중화 사대주의, 사대부 중심의 신분 질서, 그에 따른 적서 차별 등은 한때 결코 변할 수 없는 지고의 가치였다.

하지만 이 닫힌 질서의 억압을 거부하고 그건 틀렸다고 외친 인물들이 있었다.

주자의 이론이 곧 진리였던 시대에 주자와 다르게 경전을 해석한 윤휴, 이단의 낙인 위협에서도 양명학자라고 커밍아웃한 정제두, 함경도에 대한 지독한 지역 차별로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진 것을 보다 못해 분연히 일어선 홍경래, 인조가 장악한 세상에다 대고 인조반정은 쿠데타라고 꾸짖은 유몽인, 소중화 사상 속에서 오랑캐의 역사로 인식되던 발해사를 우리의 역사로 인식하는 파격을 행한 유득공, ‘놀고먹는 자들은 나라의 좀’이라며 양반도 상업에 종사케 하라고 주장한 박제가, 어떤 상황에도 타협을 몰랐고 그래서 정도전보다 더 긴 유배생활을 한 이광사,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탐학과 착취로 고통 받던 농민군을 일으킨 김개남까지.

그들은 당대엔 ‘이상한 사람’이었고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위험한 인물이었다.

결국 뛰어난 이론가에, 학자에, 실천가였지만 세상에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유배지를 전전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또 경종 사후 노론 세력이 추대한 임금 영조를 인정하지 않다가 죽임을 당하면서 ‘시원하게 죽이라’고 당당히 외친 김일경, 죽음 앞에서도 심지어 웃으며 형장으로 끌려 간 조선 천주교 도입의 중심인물 정하상, 나주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그들과의 연대를 시인하면 곧 죽음임을 알면서도 태연히 ‘그렇다’고 말한 유수원.

이들에게서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결기를 읽는다.

강요된 불편부당함 앞에서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용기와 그 행동이 불러올 불이익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결기는 지금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역사의 현장에서도 소중한 덕목이다.

현실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용기를 내어 행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침묵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윤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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