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장편소설 '종의 기원'··· '누군가'에 감춰진 인간본성의 어둠 거침없이 묘사

정유정 <종의 기원>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등을 봐왔던 독자라면 정유정을 참으로 많이 기다렸을 것이다.

펴내는 작품마다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온 정유정 작가가 <28> 이후 3년 만에 장편소설 <종의 기원>(은행나무)을 펴내고, 독자들을 찾아왔다.

작품에서 늘 허를 찌르는 반전을 선사했던 작가답게, 이번 작품에서 정유정의 상상력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빛을 발한다.

미지의 세계가 아닌 인간, 그 내면 깊숙한 곳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지금껏 ‘악’에 대한 시선을 집요하게 유지해온 작가는 신작에서 ‘악’ 그 자체가 됐다.

독보적인 스타일로 ‘악’에 대해 한층 더 깊이 있는 통찰을 선보인다.

등단작인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에선 정아의 아버지로, <내 심장을 쏴라>에선 점박이로, <7년의 밤>에서는 오영제로, <28>에서는 박동해로. 매번 다른 악인을 등장시키고 형상화시켰던 작가는 ‘악’을 ‘그’로 칭했던 것이 답답했던 모양이다.

작가의 말을 통해 그녀는 “객체가 아닌 주체여야 했다. 우리의 본성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어두운 숲’을 안으로부터 뒤집어 보여줄 수 있으려면. 내 안의 악이 어떤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점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 가는지 그려 보이려면”이라고 말했다.

집 안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된 어머니를 발견하는 것이 사건의 시작이고, 그 ‘누군가’를 밝히면서 드러나는 진실이 이야기의 주를 이룬다.

과거의 이야기를 빼고 나면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이 흐를 뿐이지만, 그 속에서 독자는 ‘악’의 속살을 보게 된다.

작가는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말로 ‘작가의 말’을 시작한다.

‘살인’은 인간이 경쟁자를 제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고, 이 무자비한 ‘적응구조’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악은 우리 유전자에 내재된 어두운 본성이며, 악인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누구나일 수 있다’는 데이비드 버스의 논리는 살인과 악, 나아가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가 된다.

사이코패스로 분류되는 이들이 저지르는 끔찍한 사건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종종 접하곤 한다.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 그들의 모습에서 작가는 인간 본성의 어둠을 포착하고 거침없이 묘사해 나간다.

어린 시절부터 학습돼 온 도덕과 교육, 윤리적 세계관을 철저하게 깨나감으로써 비로소 평범했던 한 청년이 살인자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악인의 탄생기’를 완성시킨 것이다.

악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장 끔찍한 것은 밖이 아니라 여기, 바로 우리 안에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작가는 우리의 본성 안에 숨은 ‘어두운 숲’을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내면의 악, 타인의 악, 나아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의 기원>의 이야기가 그 어떤 낯선 세계의 이야기보다 낯설면서도 우리를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게 하고, 다양한 해석의 결로 저마다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유가 악이라는 것이 밖이 아닌 여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윤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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