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서 태어나고 자란 시인의 구성진 사투리로 고향 이야기 시편에 담아

'전주성'  

시인 조기호 시집

시인이자 평론가인 호평탁은 조기호의 시편에 대해 단장이 녹아내린 슬픔과 아픔이 종종 번득거린다고 했다.

덧붙여 그는 “슬픔과 아픔이 느껴지지만 눈물에 질퍽거리는 일은 전혀 없고, 오히려 시치미 떼고 남 얘기하듯 말하며 강물이나 바라보거나 혼자 구시렁대며 하늘만 쳐다보는 식이다. 그러나 강물을 보거나, 먼 하늘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는 어른거리는 투명한 물기의 막이 있다. 그것을 살피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고 말했다.

조기호 시인이 <전주성>(신아출판사)을 펴냈다.

전주에서 태어나 여전히 전주에 살고 있는 시인이 말하는 고향의 이야기다.

성문 헐린 서문 밖 빨래터 냇가/희부연 아낙네 허벅지가 빨래보다 더 희다//따라지 잡은 놈이 덜머리 서시 끗발을 돌려먹은 눈알이 토깽이눈같이 벌건 노름꾼이거나/초상마당 밤새운 문상객이/욕쟁이할머니 매운 고추 화덕 앞에 쪼그려 앉아/콧물을 훌쩍이며/콩나물국밥을 먹는다.

//밤 깊어/등허리에 어린 자식 둘러업은 청포묵장수가/동학만큼 맺힌 목소리로/자만동 고샅을 헤매다가 한병으로 올라간다.

(중략) <전주성>에 수록된 시 <전주성>의 일부다.

조기호 시인의 한 특징이라면 사투리, 비속어를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시어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구어나 비속어들이 그의 시편 속에서는 빛나는 이미지와 상징으로 변환된다.

시인의 이러한 독특한 언어구사는 언제나 정겹다.

정겨운 사투리, 비속어가 가능했던 것은 역시 고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고, 이를 누구보다 반가워하고 흥미로워하는 독자들 역시 고향 사람일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전주에서 태어나고, 전주에서 뼈가 굵어 전주에서 쇠야 버린 시인의 구성진 글 솜씨는 고향에서 품은 세월의 흔적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은 책머리에 “오늘까지 명색이 시를 쓴다는 풍신이 제 고향 전주를 적은 시집 한 권이 없다는 게 열아홉 권의 시집을 낸 사람의 소행머리로서는 참으로 부끄럽고 염치없는 노릇이었다”고 말했다.

시인은 염치없다 느꼈을지 몰라도 독자들은 그동안 그가 보여준 시에서 충분히 고향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전주성>이 반가운 것은 고향의 정취를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고향 전주는 천년고도로서 보이는 것 모두가 글의 소재요 역사며 눈물이요 손에 잡히는 것 전부가 알뜰살뜰한 인정머리인데도 불고하고 이제까지 무심했다는 게 너무나도 무렴했었는데…” 시인의 말이 겸손처럼 느껴진다.

<전주성>이 나오기에는 전주문인협회의 전주문학상 수상이 한몫했다.

시인은 “수상을 계기로 이제까지 쓴 작품 중 추리고 보완해 시집을 엮어 볼 엄두를 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누락된 명소와 인품은 더 찾아내어 다음으로 기약해 보련다”고 말해 고향을 소재로 한 그의 시집은 한 번 더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기호 시인은 중진작가로 문예가족, 표현문학, 전주 풍물시동인회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저 꽃잎에 흐르는 바람아>, <산에서는 산이 자라나고>, <노을꽃보다 더 고운 당신>, <묵화 치는 새>, <건지산네 유월>,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꿈꾸었네>, <아리운 이야기>, <신화>, <헛소리>, <민들레 가시내야> 등이 있다.

/윤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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