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훤의 전주향한 그리움 오롯이

▲ 한 때 호남지방을 호령했던 견훤의 마지막 유언으로 현재 충남 논산시 연무읍 작은 동산에 위치한 견훤 왕릉은 충남 기념물 제 26호로 지정돼 있다.

‘내가 죽거든 전주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

한 때 호남지방을 호령했던 견훤의 마지막 유언으로 전한다.

현재 충남 논산시 연무읍 작은 동산에 위치한 견훤 왕릉은 충남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돼 있다.

견훤은 경상도 상주 가은현(현재 문경시 가은읍)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때 장수생활을 하다 서기 900년 완산(현재 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웠다.

한 때 후삼국 중 가장 큰 세력으로 성장하기도 했고, 신라를 침공해 왕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큰 아들 신검과 내분이 일게 됐고, 금산사에 갇히다 왕건에 투항했다.

결국 서기 936년 후백제는 고려에 멸망하게 되는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견훤은 죽음을 앞두고 ‘걱정이 심하여 등창이 나 수 일후에 황산불사에서 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견훤은 임종시 유언으로 완산이 그립다하여 이곳에 무덤을 썼다고 하는데, 작은 동산에 올라 시선을 올리니 멀리 호남지방이 보인다.

맑은 날에는 전주 모악산이 보이기도 한다.

무덤은 약 직경 10m, 높이 5m 규모인데, 1970년에 견씨 문중에서 ‘후백제왕 견훤릉’이란 비석을 세웠다.

묘는 왕릉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작다.

한 때 권력의 중심에 섰지만 결국 권력을 잃어버린 자의 결과물이란 생각이 든다.

나라를 잃고 자식에게 배반당하고 화려했던 권력이 사라져버린 그로선 갑갑한 마음이 온 몸에 가득 차 있을 법 했다.

오직하면 죽을 때 분이 사라지지 못해 등창이 날 정도였을까. 비운의 역사 속에서 마지막 가는 길은 얼마나 아팠을까 상상이 된다.

자신에 세웠던 나라 하지만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못한 안타까움. 전주로 향한 견훤의 심정이 이곳에서 편안하게 쉬길 바라는 마음이다.

찾는 관광객 없이 쓸쓸한 그리고 기구한 인생처럼 휑한 묘지를 뒤로 하고 내려오는 길은 허전하기 짝이 없다.

전주로 돌아오는 길에 견훤의 마음까지 챙기고 싶은 심정이 든다.

왕릉을 지키고 있는 오래된 백일홍의 붉고 부드러움이 더욱 마음을 그렇게 만든다.

/조석창기자    

▲ 견훤왕릉에서 작은 동산에 올라 시선을 올리니 멀리 호남지방이 보인다. 맑은 날에는 전주 모악산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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