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환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박유하 책 '제국의 위안부' 전면 비판서

정영환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자발적 매춘부’, ‘군인의 전쟁 수행을 도운 애국 처녀’, ‘적어도 강제연행이라는 국가폭력이 조선의 위안부에 관해서 행해진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 군인과 동지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 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일본인의 주장, 아니면 친일파가 주장할만한 이 내용은 지난 2013년 발간된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내용이다.

발간 이후 우리 사회에 파장과 큰 비판을 몰고 온 <제국의 위안부>.정영환의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푸른역사)는 <제국의 위안부>를 전면 반박하는 책이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에서 출판된 <제국의 위안부> 텍스트를 비교분석하고, 텍스트에 인용된 출처를 전부 검증했다.

선행 연구를 참고해 저서의 연구사적 위치를 확정하는 등의 고된 작업을 통해 <제국의 위안부>가 결함투성이의 저서임을 입증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료들의 조사나 독해, 적절하고 신중한 논증을 모두 희생시키면서까지 저자가 표명하고자 한 정치적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중점적으로 고찰한다.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에서 절찬받는 데에는, 박유하가 제시한 ‘위안부’ 이미지가 일본사회가 바라는 이미지와 합치한 점, 그리고 지난 수년간 일본의 미디어가 불러일으킨 붐이라고 할 수 있는 화해론이 있었다.

화해론은 가해자들이 충분히 사죄와 보상을 했으니 피해자들이나 지원 단체 쪽이 어느 정도 양보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양자는 동일한 제목으로 원서와 번역서의 관계를 표방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번역 시의 생략과 가필, 수정의 과정에서 가해진 다양한 변용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박유하가 일본의 독자들의 어떠한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 책에 실린 구체적인 예를 하나만 들어보면, 일본어판에서는 한국어판과 달리 ‘전후 일본의 역사는 사죄·보상을 해온 역사’라는 점이 더욱더 강조돼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이 한일조약의 시대적 한계를 보완해 과거의 식민지화에 대한 반성을 표명하는 것이 ‘세계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던 한국어판의 기술은, 일본어판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 사죄는 실제로는 제국이었던 나라들 중에 가장 구체적이었다’는 상찬의 표현으로 수정돼 있다.

세계사적이었던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모르고 기억하지 않은 한국 측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서술한 것이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는 일본 사회의 보수화가 가져다준 역사수정주의의 조류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이고 본격적 연구 비판서로서의 학술적·사회적 기능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또한 일본형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전반적이며 정밀한 비판적 분석을 담았고, 역사수정주의라는 현상 자체에 대한 중요한 고찰과 경고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역사수정주의는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하나의 커다란 문제기도 하다.

소위 ‘뉴라이트’ 계통의 학자들이 제국주의 지배와 군사독재를 ‘자본주의 문명’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있다.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면 일제 지배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미화 등 수정주의적 요소가 다분히 들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역사수정주의는 한국 시민사회가 직시하고 투쟁해야 할 또 하나의 핵심과제다.

/윤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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